편집디자인을 배울 때 CMYK, 교정·교열, 인쇄, 편집 등 디자이너로서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는데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읽고 있으면 그 시절에 겪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주로 오픈라인 쪽의 디자인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와 비용 책정으로 마음이 상했던 기억. 디자인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 상업적 디자인이기 때문에 클라리언트의 요구조건에 맞춰줘야 했던 기억. 열악한 환경과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야근을 옵션으로 끼고 퀄리트를 뽑아내야 했던 기억.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몇 년간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웹디자이너로 직업을 옮기고서 그나마 상황은 좋아졌지만 새로운 측면에서의 고민이 생겼다. 디자이너의 작업영역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것과 연봉이 연차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디자인의 전문성과 멀티플레이어(표준코딩, 간단한 편집디자인)를 요구하는데도 일정을 맞추려면 퀄리티에서 타협을 봐야한다. 디자인을 하면서 갖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면서 일에 재미를 찾을 때는 닥치는대로 다 했었는데 외국 기업들처럼 확실한 분업화와 전문성을 갖춘다면 내가 겪었던 그때보다 작업환경이 좋아질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근데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몇 년이 흘러야 개선될 수 있을까?
400페이지 안에 실린 수많은 작업물들. 다른 디자이너들의 고충과 현실적인 고민들.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나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에겐 현장에서의 업무가 어떻게 흐르는 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오직 디자이너들을 위한 책인 듯 싶다. 많은 시간을 작업하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밤을 지새우고 또 좋은 디자인의 결과물을 뽑기 위해서 노력했을 지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았다. 디자인이 아무런 설계나 기획없이 들어갈 수 없다. 철저하게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더 나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면서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을 듯 싶다. 디자인에 정답이 있을까? 각자 객관화시켜서 디자인을 볼까? 아니면 각자 주관적으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볼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이 존재는 할까? 디자인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누가 알아줄까? 디자인이라는 영역 자체가 전문성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그 토대를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양산화된 학원 시스템이 단지 디자이너를 뽑아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디자인의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야 하는데 기술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다보니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 현직 디자이너로서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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