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여정만이 남아있다.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거쳐 온 파키스탄을 경유해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곳을 여행하는 것이라 1, 2권과는 다르게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바퀴벌레와 쥐, 까마귀, 메추라기 한 마리 죽일 만큼의 용기도 없는 몸무게 15킬로그램의 독수리들. 썩은 고기를 먹는 세계가 이렇게 존재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놓은 것처럼 초라하고 추레한 갈색과 회색을 띠고 있다. 이 세계의 동물들은 꼭 제복 차림에 언제 어느 때라도 시중들 준비를 갖춘 하인들 같다.' p.92
순차적으로 여행지마다 겪은 에피소드를 담고 그 지역의 역사도 빼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책에 담고 있어서 그가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두 차례 영국인으로부터 카불을 점령 당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이 영국인들을 저지하고 다시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린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되갚아야 할 모욕을 당한 적도 없고 치유해야 할 콤플렉스도 없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우러러보지 않고 대등하게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독립을 위해 애썼지만 자력으로 광복을 맞은 것이 아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광복 후 남북으로 갈린 상황을 보면 3차에 걸친 전쟁을 통해 자력으로 완전 독립을 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가 대단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민간항공기가 있었고 '인도메르'가 유일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정부에서 이 항공사의 경영자 중 한 명을 항상 감옥에 가둬놓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은 전 국토가 초토화된 점을 감안하면 당시 기준으로는 나름 기반시설을 갈 갖춘 나라인 것 같다. 읽다보면 이런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 나는 내가 뭔가를 움켜쥐었으며, 그리하여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결코 완벽하게 획득되지 않는다. 세계는 마치 물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 색깔을 띠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당신 가슴 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그 텅 빈 공간 앞에, 영혼의 불충분함 앞에 다시 당신을 세워둔 채 물러난다. ... 이 공백, 이 불충분함과 어깨를 부딪치며 싸우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p. 185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오면 무엇인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도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완벽하게 획득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 공백과 불충분함을 직접 어깨로 부딪히며 싸우는 법을 배워야 진정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은 어디론가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길고 짧은 여행길에서도 그 공백을 채워줄 무언가를 하나씩은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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