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일이라는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될까? 만덕동은 33번 버스 정류장 종점에서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로 붐볐고, 노인들은 골목 평상에 모여 앉아 소일거리를 즐기던 곳이었다. 늘 사람들로 넘쳐서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상학초등학교를 지어야 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이웃 간의 소통이 활발하고 정을 싹틔우던 사람 사는 동네였다. 비록 낡고 허름해보여도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재개발 계획 아래 동네 사람들은 등 떠밀 듯 떠나야 했고 옹기종기 모여 살던 주택 위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어릴 적에 살던 내 동네도 이제 그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는데 전국 곳곳에 건설되는 아파트 난립은 환경과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건설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나섰던 그녀는 이제 남편 고향 부근인 고등골에 살고 있다. 아는 작가 후배가 건축가의 도움으로 낯선 시골에 안락처를 마련했다. 인도를 갔다온 뒤로 이제 고등골을 명상센터로 운영하기도 하는데 낯선 시골에 정착한다는 게 굴러온 돌멩이에겐 녹록치 않은 일이다.
<맨땅에 헤딩하기>는 저자가 겪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고등골 편지, 내 자유의 크기, 사람 사람들, 어느 갠 날의 기억으로 편의상 분류하였지만 어디를 읽어도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개발 욕심에 사라져버린 것과 홀연히 떠나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책을 펴내며에 작가가 말을 들어보면 색상이 분명해진다. "삶은 정답이 없는 각자의 여정이다. 어차피 태어나는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길을 가는 일이다." 그 여정에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가슴이 시키는대로 더 늦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다. 미리 겪어본 적도 없거니와 무슨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 길을 가는 여정에 겪게 될 수많은 이야기들은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접 경험이 된다. 내게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며 공감하고 옛 추억에 잠시 책을 내려놓다 아련히 떠올려보는 그 때의 기억들은 내 삶의 조각들이다.
고등골과 부산을 거점으로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참 순탄한 경험담이 없다. 이웃과 부딪히기도 하고 잃어버린 휴대폰이 인연이 되어 좋은 부부의 성품에 절로 고개를 끄떡여진다. 옳게 살아간다는 건 내 마음에 욕심을 게워낸 후에야 삶 곳곳에 녹아들 수 있다. 억지로 따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머리와 마음이 일체되어야 한다.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믿고 싶다. 각자의 길을 따라 떠나는 여정에서 적어도 좋은 구경하고 사람들과 만나다 간다고 말하고 싶다. 영원한 건 존재하지 않다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하지 못해 하는 후회는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서평(Since 201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이제 글쓰기 : 베스트셀러 저자 제프 고인스의 글쓰기 전략 (0) | 2018.09.11 |
---|---|
[서평]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 나를 아끼고 상처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0) | 2018.09.04 |
[서평] 고독한 늑대의 피 : 유즈키 유코 장편소설 (0) | 2018.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