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톺아본 백제사 순간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발 디디며 분주하게 살아가는 땅 아래에 얼마나 많은 유적들이 묻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 9월 1일 멸망할 때까지 백제는 678년간 한반도 서남부 일대를 지배했던 국가다. 우리가 <삼국사기>를 통해 알던 것보다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 몽촌토성, 무령왕릉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에서 발견한 정보들이 훨씬 많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이 전시된 국립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왕릉원을 가보면 그 규모와 방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백제 유물의 발굴 현장과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함과 동시에 2천 년 전 있었던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복원하여 실타래를 엮는다. 남아있는 고대 사료가 많지 않고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추정할 뿐이다.
백제의 금속 공예 기술은 실로 놀랍고 섬세하다.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동대항로, 장신구류만 봐도 그 정교함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만하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 부부가 착장한 것으로 알려진 장신구류는 금순도 99.99%로 당시 백제가 얼마나 강국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금동신발의 문양은 입체감으로 가득하고 매우 세련되었다. 당시 백제 장인의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기술과 예술 면에서 완성도가 높았던 것이다. 고대사의 역사와 흔적을 따라 발췌하는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우린 좁은 범위의 역사를 배웠고 알려지지 않은 훨씬 더 방대하고 넓은 역사에 대해선 모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고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앞선 극 초정밀의 예술을 가졌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고학자인 김원룡 교수, 한양대문화재연구소 소속 황소희 연구원, 한국정신문화원 이형구 교수 등 온몸으로 개발 중인 발굴 현장을 막아서고 지켜낸 노력 덕분에 수천 년 전 찬란하게 꽃피웠던 백제의 문화유산이 남긴 흔적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다만 고적 보존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강남 개발 광풍의 여파로 심하게 훼손당한 석촌동 3호분과 다른 1·2·4·5호분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개발보다 역사 발굴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무덤에서 엄청난 유물이 온전하게 발굴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보존하고 알고자 하는 노력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서울 몽촌토성 일대와 공주·부여에 가면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데 2012년부터 발굴조사 중인 부여 가림성 발굴 현장에서 최후까지 지켜낸 백제 성벽과 항전 정신은 계속 계승될 것이다.
- 저자
- 이기환
- 출판
- 주류성
- 출판일
- 202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