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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책 리뷰] 독의 꽃 : 최수철 장편소설

독의 꽃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병실 안. 프롤로그에 정체를 드러내던 조몽구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앞으로 몸속의 독소를 배출시키고 중화시키는 해독 과정과 더불어 장기들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치료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새어있고 얼굴을 비롯한 살갗은 심하게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온통 갈라져 있다. <독의 꽃>의 주인공인 조몽구가 태어날 때부터 학창시절, 대학생활, 군 생활, 복학 후 졸업 이후의 삶을 다루면서 독으로 시작해 독으로 끝나는 연결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독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든 한 남자의 기묘하면서 기구한 인생을 다뤘다. 두려움과 매혹, 도취와 환멸, 해독과 정화로 이어지는 각 장마다 조몽구의 시기에 따라 어떤 일들을 겪으면서 자랐는지를 보여준다.

옻에 민감했던 어머니는 독에 취약했던 데 비해 옻닭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던 아버지는 체질적으로 독과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며 병약했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조몽구는 어릴 적부터 병치레 많을 만큼 아픈 데다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면서 자랐다. 아버지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독을 품고 태어났지만 배출하는 법은 알지 못했다. 갖은 방법으로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자신도 원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잠시 두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술은 결국 독이 되어 끌어 다니게 된다.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술은 삶의 많은 것을 훼손시키는 다른 차원의 마비이고 마취였다. 결코 결혼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속으로 경멸하면서도 여자를 만나고 섹스에 중독되어간다.

"세상에 독이 넘쳐났고, 모든 것이 독에 오염되었고, 또한 모든 것이 독 그 자체였어."
"독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독이었어."

52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지닌 한 남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 또한 다른 차원의 독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세상에 독이 넘쳐난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삶을 위협하는 독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조몽구의 삶을 보며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독에 관한 주제가 이렇게 흥미로울 줄 몰랐다. 말 그대로 읽을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될수록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고 독을 해독하고 두통으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조몽구의 결말이 씁쓸했다. 두꺼운 책을 이렇게 흡입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버무려놓는 건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