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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서울의 심연 :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쪽방은 기껏 해봐야 1평 남짓한 공간에 겨우 밥 먹고 잠잘 수 있는 공간이다.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 한다. 냄새, 소음, 벌레, 무더위에 취약하고 환기도 잘되지 않는 곳에서 산다. 노숙자보다 낫지만 고시텔에 사는 사람들보다 못한 환경에서 사는데 한 달에 월세 이십몇 만 원은 꼬박꼬박 낸다. 이렇게 열악한 1평 쪽방촌을 운영하는 건물주들을 보고 우린 빈곤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세대 주택을 잘게 쪼개어 만든 1평 쪽방이라 주변 환경은 고시원보다 못하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 쪽방촌은 돈의동, 동자동, 창신동, 영등포동에 몰려 있는데 수십 명의 쪽방촌 거주자로부터 월세를 받는 건물주는 관리인을 고용해 상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 쪽방촌의 문제는 빈곤에 내몰린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환경 속에서 희망조차 잃어버린 삶을 겨우 버텨낼 뿐이다.

쪽방촌 거주자를 돕는 사회복지시설인 쪽방상담소와 사회복지단체 사랑방, 개신교 교회의 지원 덕분에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빈곤 탈출을 위한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대도시의 빌딩 숲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계급화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 누구도 쪽방촌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방영된 쪽방촌 거주자들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출구 없는 빈곤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들의 삶이 암담할 뿐이다. 도시빈민, 쪽방촌, 빈곤 밀집 지역의 생태계를 주요 연구 분야로 다수의 논문과 책을 출판한 저자의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쪽방촌의 현실적인 문제와 빈곤 거버넌스 구성 등 대안을 모색해 본다.

빈곤층이 주로 사는 쪽방촌 방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직접 빈방 벽보를 보고 연락해 구하거나 쪽방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거나 부동산을 통해 구해야 한다. 부동산을 통할 때는 자신이 빈곤층에 있음을 검문 당한다. 개인적으로 보면 쪽방촌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시스템은 빈곤층이 자립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복지가 너무나도 취약하다.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간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이 책은 빈곤의 밑바닥에 떨어진 쪽방촌 사회를 치열하게 추적하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 봐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도 장애를 입지 않거나 빈곤층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쪽방촌의 문제를 고민해 보고 숨기고 싶은 심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었던 책이었다.

 

 
서울의 심연
긴 시간 빈곤을 연구하고 다수의 논문들을 쓰며『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를 발표한 빈곤 연구자 탁장한은 박사과정을 마칠 시기에 이른 2022년에 오랜 시간 다짐해 왔던 일을 드디어 실행합니다. 꾸준하게 관련 연구들을 분석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며 자료를 수집한 동자동 쪽방촌에서 집을 얻어 살기를 결심한 것입니다. 자신이 파악한 내용들의 실제 현장을 체험하고 이론과 현실을 일치시키려는 이 선택은 곧 빈곤 연구 10년 차가 될 연구자로서 필연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게 된 그곳에서의 삶은 예상을 뛰어넘는 극한의 체험이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부적합한 환경과 언제 어떻게 갑자기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없이 사는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인정과 인정을 부정하게 만드는 관계들, 무조건적인 지원과 선의가 품을 수 있는 악의까지. 그러한 극단적이고 혼돈스러운 경험들의 와중에서도 그는 연구와 분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하나로 담은 것이 이 책 『서울의 심연』입니다. 그래서 그는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빈곤층의 생활 반경에 거주하러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 쪽방을 얻고 함께 살며 간극을 좁히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면서도 이방인이라는 낯선 감정을 좀체 지울 수 없는 것, 출구가 없다는 생각으로 살면서 눈앞에 보이는 빈곤의 참상을 견디는 것, 그동안 쓴 연구들과 현실 간의 괴리에서 크나큰 혼란을 겪는 것. 쪽방촌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고충과 딜레마는 숱하게 많았다. (…) 쪽방촌에 거주하면서, 지속되는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도시 빈곤층이 수행하는 다양한 행동 양식을 접하고 학습했지만 여전히 빈자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부득이하게 발현시키는 의존적 태도도, 자주 저지르는 부정도, 이웃 간 협력과 혐오도 모두 좋다. 나였어도 극한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며, 실제로 쪽방에서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하는 고통은 어떤 이유로든 좋아질 수 없었다. 내가 만났던 200여 명의 쪽방 거주자들 중 그 누구도 그곳이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되기를 바란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쪽방촌을 회고할 때면 항상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묘한 양가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 책은 그 복잡한 모든 것들을 담으며 쓰여졌다. -『서울의 심연』 9~10p
저자
탁장한
출판
필요한책
출판일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