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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제목에 이끌러 보게 된 책이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발칙한 제목이다. 저자의 바램이 담긴 한마디다. 일하지 않으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재벌 2세가 되거나 아니면 건물이나 부동산 소유자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경말씀대로 일의 댓가로 받은 임금으로 우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에 살고 있다. 이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돈이 들어가지 않는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야산이나 농촌에서 밭을 일구며 갖가지 채소와 과일을 심고 몸에 좋은 약초들로 담금주를 만든다. 하지만 더 부지런히 일해야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물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은가?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미친 사회를 위한 화장실 사보타주'에 있다. 쓸모없는 자들도 내장국을 먹으면서 배부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산야에서 저자는 체험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일할 것을 강요했다. 사실상 노예처럼 기업에 종속되버린 것이다. 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은 그 가장의 가족들은 당장 먹고 살 일부터 궁리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렇게 무너지며 실업자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향하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인간이 모두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일과 삶의 주체는 오롯이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본가들에 의해 잠식된 사회에 대한 환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최저임금만으로는 저축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설계나 대비를 도무지 할 수 없고 현상유지 정도를 하면 다행이다. 이 당면한 문제는 얼마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 <행복을 찾아 3만리>에 나온 젊은이들을 통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일자리 부족과 급여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일은 같지만 처우가 다른 불공평한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에 대한 존중을 논할 수 있을까? 당장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대하는 갑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무너진 공동체에서 우린 각자도생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연대는 공동의 관심사를 두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시작한다. 서울역 광장에서 하루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든 노숙자들. 일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사회에서 낙인찍혀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일까? 구라하라 야스시는 과연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나 역시 그런 방법들을 찾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