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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책 리뷰] 멜랑콜리 해피엔딩


박완서 작가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취지로 기획된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29인이 각자의 시각에서 엿본 내용을 단편 소설이라는 형태로 풀어낸 소설집이다. 일종의 오마주로 작가마다 다양한 개성과 일상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아직은 진득하게 소설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라면 매우 짧은 호흡의 단편 소설이 제격이다. 몇 페이지 되지 않아도 에피소드마다 담긴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이야기가 살아 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던 차에 끝나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핵심을 짚어내는 일이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나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 후에 느끼는 감동은 생각보다 크다.


'추천의 글'에서 오정희 소설가가 말한 대로 우리는 '무감각하게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감각적으로 살아간다지만 정작 감수성은 점점 무뎌져가서 타인을 향한 무심함은 늘어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이슈 외에는 마음이 동하여 움직여지지 않는 도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럴 때마다 청계천에서 헌책을 뒤적여대던 시절을 떠올린다. 책을 깊이 몰입하며 읽었고 내 인생관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던 순간이었다. 단편소설집인 <멜랑콜리 해피콜링>을 읽으면서 옛 문학 감수성이 조금씩 드러날 때가 있다. 잠시 나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에 가있기도 하고 어느 봄날의 밤길을 아들과 함께 걷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헤아려보기도 한다.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불투명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공동운명체 안에서는 전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꾹꾹 눌러야 한다.


오마주를 한다는 것은 그 작가가 표방한 작품 세계를 자신만의 문학으로 재해석해서 쓴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박완서 작가는 '사람다운 삶에 대한 추구'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결국 소설도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 안에는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고 인간을 이해하는 역할과 개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쉽게 감정을 소비하는 이 시대에 문학 소설을 읽는다는 건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고, 다른 사람이 지닌 감정과 삶을 이해하는 통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여러 작가들의 글을 모아 만든 단편소설집이라 반가웠고, 아직도 문학은 읽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
국내도서
저자 : 강화길,권지예,김사과,김성중,김숨
출판 : 작가정신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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