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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책 리뷰]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2011년 1월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개정판 소식을 반가워할 것이다. 이미 1991년과 2003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니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책머리에 밝힌 것처럼 책에 실린 짧은 소설들은 문단에 나오고 나서 10년 안에 쓴 것들이니 모두 1970년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정판을 내면서 일부러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나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고치지 않았다. 고치지 않은 덕분에 후대에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묘사한 1970년대의 장면을 고스란히 책에서 포착해내게 되었다. '마른 꽃잎의 추억 4' 에서 부인은 집에 전화기를 새로 개통한 것이 반가웠던지 남편과 통화를 하는 내내 기분이 들떠있다. 그 전화기에서 울리는 '쓰-' 소리가 고혹적으로 들리는 반면 찌르릉 소리는 도전적이라니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리에는 공중전화가 집집마다 전화기가 놓인 것을 생각하면 이젠 그리운 풍경이 되어버렸다.


시대에 따라 소설은 다른 관점에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열쇠 소년'에 등장하는 재롱부리며 부르는 CF 송과 부부 교사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마련한 아파트에서의 생활. 맞벌이 부부로 계속 생활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제대로 학교를 마치고 사람 구실을 하려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란다. 이 얘기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비교적 짧은 단편임에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유려한 글 솜씨에 천상 글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하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도 인물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야기 전개에 막힘이 없다. 한국 문학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작가의 초기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고 자개장 위에 전화기와 결혼사진, 빗, 로션 등이 놓인 그림의 양장본이라 마치 새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원통 모양을 한 알라딘 난로의 불빛에 의지하여 열심히 밤에도 글을 써 내려갔을 일렁이는 그림자 속의 작가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지 궁금하다.


70년대의 감성은 지금보다는 분명 순수했을 것이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었기에 진심을 그대로 믿고 받아주었던 낭만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70년대의 집 밖은 긴장과 억압의 분위기로 발표하는 것 하나하나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유신시대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하얗게 밤을 불태운 작가의 글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은 시간을 초월하여 다시 읽힐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유는 글이 시대상을 반영하여 문장마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글을 쓴 시기의 배경을 이해한다면 더 마음에 와닿게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순간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에 수록된 46편의 짧은 소설마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었고,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국내도서
저자 : 박완서
출판 : 작가정신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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