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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만엔 원년의 풋볼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4)




2007년에 출판사에 출간된 이후로 10년만에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으로 재간행되어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은 명성답게 심오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책 제목이 궁금해서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만엔은 일본 연호 중 하나인데 1860년으로 대를 이어서 중첩된 사건을 절묘하게 결합시켜서 탄생한 제목이었다. 만엔에 골짜기 마을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는데 바로 주인공인 마쓰사부로의 증조부의 동생이었다. 그 후 100년이 지나 선조의 투쟁기에 심취해 있던 동생 다카시가 풋볼 팀을 만들어서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여 습격한 사건으로 이후 형인 마쓰사부로와의 갈등을 매조짓게 된다. 함축된 의미가 다수 내포된 제목이다. 574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후 15년이 흐른 시점의 일본인의 모습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이자 일본 근대문학 중 최고작으로 뽑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를 잘 분석한 평론이나 서평, 해설집 만으로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부터 잠재된 다카시의 폭력성과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으로 대표되는 이 소설은 근대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첫 시작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얼굴을 빨갛게 칠하고 항문에 오이를 박힌 채 목 매달아 죽은 친구는 그 전에 요양소에서 치료받으며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여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쓰사부로의 설득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다카시는 마을 청년들에게 풋볼이라는 걸 가르치면서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열정을 그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그러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조선인 백승기가 모자라는 생필품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에 분노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습격하여 약탈한다. 일본은 패전 후에도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불행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사실 이 작품은 진득하게 읽기에는 좋은 데 거대한 스케일의 대서사시라서 조금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60~1967년의 시대적 정황을 알고 읽으면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 인간의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국내에서도 일본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만한 대표적인 작가라 이 소설이 가진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자기 비하와 수치심의 감정들.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과 주체할 수 없는 광기들을 사실적인 필체와 디테일함으로 쓴 책이다.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다 워낙 호흡이 긴 작품이라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은 나무랄 데 없는 소설이라서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