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먹고 살 일만 걱정없으면 되었고, 저자가 처음에 그랬듯 나와는 무관한 일쯤으로 여겼다. 취업, 다이어트, 직장생활, 문화생활, 여행, 취미활동이 주된 관심사였지 정치와 역사, 사회문제에 대해선 철저히 방관자인 채 살아왔다. 단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정도였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 쯤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터전에서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이고 언제 어떻게 같은 일이 되풀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관심했고 내 삶이 바빠 애써 외면한 채 살아왔다. 사회적인 이슈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걸 광화문 촛불집회로 자각하게 되었고,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정국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혐오증과 무관심, 과거에 대한 망각은 권력을 쥔 자들이 의도하는 일이 아니던가?
불과 해방 후 71년만이다.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6.25 전쟁을 지나오면서 이미 정신적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것은 아닐까? 근현대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잔인무도한 대학살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참혹할 뿐이다. 전쟁이라는 비극보다도 사실 반공, 빨갱이라는 미명 하에 죄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당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역사와 국가편을 읽다보면 국가가 주도한 국가폭력 문제는 상당히 심각했다.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대강 사업, 용산 참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소록도 주민 학살, 원폭 피해자 문제, 거창산청함양 주민 집단학살,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금강산댐 사건,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쉽게 넘길만한 사건들이 아니다. 반민특위는 강제 해산되어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고, 과거사위원회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두 해산되어야 했다.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사건들이 많을텐데도 또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슬픈 대한민국 이야기>는 역사, 국가, 자본주의·복지, 노동, 교육·언론, 경제·정치, 시민 등 매우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중요 이슈들은 빅브라더와 시민K의 눈으로 꼬집어내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라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문제들을 저자는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신민화 정책을 펴면서 그들 권력에 종속되길 바라는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정치, 경제권력은 시민이 아닌 신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들이 펼치는 정책과 시스템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장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사회시스템이 움직이도록 하면 된다.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면 늘 깨어있고 사회문제가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마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잊혀졌을 많은 사건들을 떠올려보라. 큰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반복되는 사건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는 내겐 가장 큰 사건이었다. 급성장의 여파로 인해 인간의 탐욕이 지배했고 이는 부실공사와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합작품인 셈이다. 경제양극화로 인해 일자리 부족과 생활고는 많은 사람들을 벼량 끝으로 내몰았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들이 많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경제는 계속 발전해가는데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오직 돈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겨우 버텨내고 있다. 다른 가치보다 돈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벌어졌던 역사를 잊지 말고 후대에 계속 알릴 의무가 있다. 이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면 어떤 비극이 펼쳐질 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고 평소 고민해오던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어서 한 편으로는 통쾌했다. 연대의식, 문제제기, 의문, 시위 등 사회의 통념에 물음표를 제시할 수 있는 사회풍토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거북이와 토끼로 본 동물들의 경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같은 통조림 제품만 양산하는 학교 시스템이 생각났다. 사회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대학입시와 성적 등수에만 목매는 상황과 대치되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언제쯤이면 모두가 희망과 꿈을 품을 수 있는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올 수 있을까?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같은 이웃이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존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서로가 경쟁상대이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웃이 되었을까? 정말 슬픈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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