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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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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빠져들었다.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는 총 길이 4,285㎞로 워싱턴주, 오리건주, 캘리포니아주를 지나는 장대한 여정이다. 운명인지 아니면 필연이었는지 25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지리산 자락에서 조우한 <93 에베레스트 원정대> 여성 산악인 회원 6명은 이제 중년이 된 나이에 PCT를 함께 걷는 계획에 기꺼이 동참한다. 미국 서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을 따라 종단하는 트레일로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져 있다. 트레일 중간엔 모하비 사막 구간도 있고 산맥을 따라 걷는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지만 다행히도 구간마다 트레일 엔젤의 도움으로 하이커들은 온갖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가끔은 따사로운 햇볕과 날씨 좋은 어느 주말에 소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둘레길을 걸을 때면 오롯이 내 두 발걸음에만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갑자기 밀려드는 행복감에 도취될 때가 있다. 걷는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다른 누구의 참견이나 간섭 없이 내가 지닌 힘만으로 걷기에 일정을 마무리한 뒤 느끼는 성취감도 크다. PCT를 정복한다는 건 단기간이 아닌 몇 년에 걸쳐 구간을 나눠 진행해야 할 것 같다. <93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2018년 오리건을 시작으로 2019년 캘리포니아 남부, 2021년 캘리포니아 중부, 2022년 워싱턴을 완주했는데 트레일 난이도를 고려했을 것이다. 보통 한 달 정도 기간을 잡고 걸어야 하는데 물 수급, 모기 퇴치, 날씨 변화, 음식 준비뿐만 아니라 여러 돌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아마 혼자서 였으면 도전하기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수십 년간 산악으로 다져졌다고 하지만 이젠 다들 중년에 접어든 나이의 여성이기에 페이스 조절과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수록된 사진 하나 없지만 비슷한 류의 책과 달리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어 지루하다는 느낌보다는 다음은 어떤 모험과 색다른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지게 한다. 때론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배고픈 하이커들을 위해 음식을 내어주고 숙소까지 제공하는 트레일 엔젤들에게 깊이 영감을 받았다. 단지 PCT를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날짜 표기를 하며 트레일 구간에 물을 채워 넣고 연락도 취하며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평소 둘레길을 걸었거나 걷기를 좋아한다면 이 책 또한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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