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은 스물 두 살의 작고 아담한 여자 혼자서 달랑 350만원을 들고 141일 동안 8개국을 여행하고 다닌 기록을 쓴 여행기다. 그녀가 여행을 떠날 때 손에 쥔 돈은 350만원이었다. 은행 계약직부터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악착같이 시간을 쪼개면서 여행 자금을 모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암이 재발하면서 집안 형편도 어려워지고 자신이 모은 액수 중 일부를 집에 보태고 남은 액수이다. 여행을 떠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지만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여행지마다 주의해야 할 점과 팁들을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행기를 읽다보면 궁금해 할만한 점들을 Q&A 형식으로 글을 남겨서 다소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여행과 청춘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청춘을 지나왔던 날들이 떠올랐다. 저가항공과 카우치서핑은 여행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현지인들과 부대끼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길에 오르면 사람이 성숙해진다고 한다. 자신을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는 낯선 곳에서는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고, 본래의 내 모습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인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태국을 거쳐 141일이라는 기간 그녀가 느낀 점들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있다. 그녀가 만든 블로그에 가보면 여행지에서 쓴 글들이 올려져 있는데 참 당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참 많지만 어린 여자 혼자서 간 여행담을 읽는 건 처음이다.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겪는 여행은 그녀가 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초보 여행자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들과 고생들도 그래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신만의 체험인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장 부러운 부분은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컬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축제현장,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부딪히지 못하면 결코 모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처럼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관광지를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그런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키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품은 세상은 누구보다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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