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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으로 걸어다녔던 어릴 적 동네의 골목은 내게 우주와 같았다. 우연히 새로운 길을 발견했을 때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가 된 듯 흥분에 사로잡혔고, 걸을 때마다 골목은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또한 골목으로 이어진 길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통로였다.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도 하고 방역차량이 연기를 뿜으며 달리면 그 차를 따라 아이들과 함께 달려간다. 골목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담겨있고 숱한 이야기들이 쌓이는 곳이다. 요즘처럼 도시가 개발되지 않았을 때의 골목은 정겹고 사람 사는 느낌이 들었다. 반듯하게 뻗어있기 보다 어디로 이어질 지 모르는 골목길은 늘 걸어도 새롭다.

<골목 인문학>은 그래서 내게 특별한 책이다. 도시 재개발의 여파와 젠트리피케이션이 형성되어 사라져가는 옛 골목의 풍경이 아쉬웠는데 그때 아이들과 즐겁게 뛰어놀았던 기억을 되살려준 책이기 때문이다. 떄묻지 않고 순수했던 시절에 품었던 꿈과 낭만이 살아숨쉬는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전국 곳곳의 무수한 골목을 걸으며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담아낸다. 지금도 꼬불꼬불 구부러진 길을 걷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경제 논리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에 대한 기억 속에는 우리들이 걸었던 삶과 추억이 곳곳에 남아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만큼이나 같은 모습의 골목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1년부터 매년 서울 도성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 서울순성놀이에 참가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허름한 외진 길이었던 곳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완공되거나 장충체육관이 새롭게 단장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찌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도 그 모습을 바꾸듯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절을 살았고 기억에 남겨두었다는 건 행운일 지 모른다. 도시에 골목이 존재하는 이유와 사람들 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있다. 오히려 옛 것을 살리는 일이 사람들로 호감을 사고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나라 어떤 도시를 여행하게 될 지 모르지만 골목을 따라 여행을 하면 그곳의 삶과 사람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