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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무감각한 사회의 공감 인류학



제3자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 가짜뉴스가 다량 생산되는 요즘은 더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들이 받은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들을 조롱하고 매도하면서 이념적으로 몰고가는 자들이 있다. 무수한 감정의 파편들은 무감각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양극단으로 갈라서게 했다. 그들은 왜 억울함을 호소하며 길거리에 나와야 했는지 살펴볼 마음의 여유조차 우리에겐 없다. 공동체 의식보다 연대보다 이기적인 집단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책에 소개된 아픔들은 가족, 낙인, 재난, 노동, 중독으로 대부분 뉴스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폭력과 사회적 시선의 잔인함, 기업으로부터 이유없이 당한 참사 모두 우리 사회의 역사를 관통하는 어두운 민낯의 그림자들이다. 낯선 것으로부터의 공포와 가짜 세계에 현혹되어 이성적 판단을 잃고 있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피해자를 힐난하고 중단하라고 강요한다. 이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현실임을 알면서도 정당하지 않은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억압과 저항에 부딪혀야 하는 우리들이 가엽게 느껴진다. 왜 피해자의 아픔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자정 능력이 떨어질 정도로 미성숙한 사회라 믿고 싶지 않다. 개인의 부주의와 낙약함, 무능력 탓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의료 인류학자는 아픔을 아픔으로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나와 전혀 다른 제3자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강함을 유지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아픔을 아픔으로 느껴봐야 한다. 직접 내가 겪어보기 전까지는 피해자의 심정을 모르는 법이다. 방송에서만 나오는 일인 줄 알았던 일들을 내가 겪는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서로 가진 것없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다.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인데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한 사람들이다. 아픔에 공감하며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 우리를 가로막는 경계선은 허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