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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저자는 나이 든 독신 임시 거주자로 택한 삶의 보금자리는 망원동이다. 어릴 적에 살았던 망원동이 불쑥 나와서 반가웠다. 그녀가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묻어나오는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은 정겹기만 하다. 예전에 살던 동네가 아닌 곳에 살게 되면 주거 반경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일상이 새롭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내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근처 맛집을 하나둘씩 찾아가서 맛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싶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예전에 살 때는 그래도 이웃과 소통하며 지냈다는 걸 잊은 지 오래되었다. 익명의 사회에서 일상은 개별 공간이 되버린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혼자 산다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가구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맥주 하나면 저무는 노을을 안주 삼아 낭만에 흠뻑 젖고 비록 가난해도 문학을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며 산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서영인 작가의 책이다. 한층 깊어진 일상을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우선 재미가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내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두고도 맛깔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것이 보담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 그림과 함께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일깨우게 한다. 가난하지만 낭만을 품고 산다는 듯 말이다.

쓸데없이 바쁘게 살면서도 삶은 늘 제자리인 것만 같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만큼 그 범위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간섭없이 홀로 사는 사람은 조금 더 자세하게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글마다 촌철살인이 느껴지고 작가가 살아가는 삶의 층위가 문장 속에 켜켜이 녹아들어 있어 유쾌하고 감질맛나게 사는 것 같았다. 가난이라는 굴레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지성과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