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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유의미한 살인 : 카린 지에벨 장편소설



잔느의 일상은 시계처럼 매우 규칙적이라 누군가 유심히 그녀를 지켜봤다면 알 수 있을 정도다. 끊임없이 왕복하는 기차는 같은 노선 사이로 매일 보는 똑같은 벽과 그 벽에 그려진 똑같은 낙서,  빠르게 지나가는 똑같은 건물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하게 흘러간다. 잔느 또한 언제나 같은 열차, 같은 자리에 앉는데 미국 추리 소설을 꺼내 읽던 어느 날 그녀 옆 자리에 흰 봉투가 놓은 것을 발견하다. 한참 망설이다 봉투를 열고 읽기 시작한다. 그 편지에는 놀랍게도 엘리키우스라는 사람이 자신을 어디선가 계속 지켜봤다는 듯 기차에 오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는 습관까지 적혀 있었던 것이다. 편지에는 '당신은 내 얼굴을 알고 있고 심지어 내 목소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잔느를 흠모하는 듯한 내용의 편지였던 것이다. 나라면 섬뜩했을만한 내용이다. 스토킹을 당한 것인지 그가 설치한 카메라에 의해 감시 당하고 있는 것인지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잔느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5월 12일 화요일에 발견한 편지는 두 장 분량으로 내용이 길어졌다. 엘리키우스는 재회할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다면서 샤를로트 이발디라는 여성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털어놓은 대상으로 잔느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여자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명을 앗아간 여성들은 살 자격이 없다면서 잔느는 다른 사람이라는 말로 소소한 습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한다. 기상 시간이 오전 6시라는 것과 어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까지. 잔느의 소재지를 알고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모를 내용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없이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사람이라면?

잔느는 그 이후 묘한 감정을 느낀다. 지금까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잔느는 엘리키우스의 편지 속에 적힌 사랑의 고백과 관심을 받으며 급기야 고마운 감정을 갖게 된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 앉았는데 살인자인 엘리키우스만이 그녀를 알아봐 준 것이다. 늘 불안한 듯 핸드백을 꼭 쥐는 습관을 지닌 잔느와 엘리키우스는 과연 사랑을 맺게 되었을까? 21장에 이르러서 충격적인 전개로 결말을 맺게 되는데.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때 찾아온 사랑의 편지. 같은 열차, 같은 좌석에 놓은 그 편지는 잔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기차에 오를 때면 엘리키우스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잔느는 점점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에 황홀한 감정마저 느낀다. 과연 그 결말은 행복하게 끝날 수 있을 것인가? 그 위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소설를 읽는 내내 잔느로 몰입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