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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책 리뷰] 투기자본의 천국 : 국가 부도와 론스타 게이트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로 촉발된 IMF 외환위기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드러난 론스타 게이트 사건을 매우 심층적으로 취재하였다. 이 책을 쓴 이정환 기자는 저널리즘 관점에서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르게 된 전말과 이후 사모 펀드가 국내 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검은 손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다. 칼라일처럼 사모펀드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려면 퇴직 관료를 영입하여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가 퇴임하자마자 김앤장의 고문으로 옮겨갔고 한승주, 송광수, 박한철, 조윤선, 윤증헌 등이 김앤장 출신이거나 고문을 맡았다는 건 단지 우연일까?


'한국에서는 법률 회사들이 법조계는 물론이고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인맥을 무더기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굴지의 로펌들이 변호사도 아닌 이들을 왜 끌어들이는지, 이들이 이곳에 가서 얼마의 연봉을 받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p. 41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끼어든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로펌이 바로 김앤장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퍼즐 맞추듯 추리해나가면 초유의 외환위기 속에서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려는 사모펀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국 경제를 말아먹는 자들은 누구인가? 주주 자본주의의 위험성과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투기자본은 론스타처럼 한국 경제를 수십 년간 농락해왔다는 걸 보며 그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은 외환은행 인수를 둘러싼 론스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맥쿼리처럼 해외 기업이 국내 주요 사업에 진출할 때 발생하는 문제도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처럼 국내·외 상황은 심각하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반대한 재정국 차관처럼 결국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껴앉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가 입은 피해도 상당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국가 경제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재정경제부,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가 외부 사모펀드에 농락당한 채 두 눈 뜨고 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론스타 분쟁과 허술한 법체계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무겁고 심각하며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어떤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과 섬뜩함으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론스타가 나쁜 놈이 아니라 출처 불명의 사모펀드에 은행 인수를 승인한 한국의 감독 당국이 진짜 나쁜 놈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피 같은 세금 수백억을 쏟아부은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을 해외 기업이 인수하려고 할 때 승인에 앞서 철저하게 검증하고 합당한 조치인지 감사해보지도 않고 헐값에 팔아넘겼다. 이것만으로도 무능한 한국의 금융 감독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정말 나쁜 놈일지 모른다. 국가와 국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을지 의문이다. 국가를 좀 먹고 국민이 모든 피해를 내리받는 모습들을 보며 왜 한국이 투기자본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에 대해 이 책은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상세히 보여준다. 그래서 추리소설 보다 더 집중하며 읽게 된 것 같다. 판단 여부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지만 앞으로 론스타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투기자본의 천국
국내도서
저자 : 이정환
출판 : 인물과사상사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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