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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9990개의 치즈 : 빌렘 엘스호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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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씌여진 시기를 감안해도 요즘 직장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놀랐다. 1934년에 <치즈>로 출간되었는데 특이하게도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방식의 화법을 쓰고 있다. <9990개의 치즈>는 풍자소설로써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편지나 마차, 다이얼 전화기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마치 현대소설처럼 느껴질만큼 세련된 문체가 돋보였다. 페이지도 하루 몇 시간만 투자하면 다 읽을만큼 가벼운데 그 안에 든 내용은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날 밤중에 라르만스의 어머니가 임종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프란스 라르만스는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형의 친구인 반 스혼베커 씨를 만나게 되고 사무실에 초대를 받으면서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그 모임은 로얄클럽처럼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사람들만 초대되는 곳이었는데 조선소 직원일 뿐인 그를 소개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스혼베커 씨는 그에게 네덜란드 회사의 벨기에 지점을 맡아볼 사업이 없다며 치즈 사업을 권유한다.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이미 직장생활에 한계를 느낀 라르만스는 고민 끝에 치즈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치즈를 공급해줄 호른스트라를 소개받는다. 무려 20톤의 치즈였는데 치즈 갯수만 10,000개에 달한다. 사업 경험도 없던 그는 단지 사업체를 이끄는 사장이라는 것에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것을 느낀다. 스혼베커 씨 주최로 여는 모임에서도 확실히 그에 대한 대우가 달라져 있었고, 그를 어엿한 사장으로 인정하는 모습에 잔뜩 바람이 분 상태다. 정작 중요한 판매처를 뚫지도 못했고 대금 결제일이 임박해서야 여기저기 알아보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한다. 그 공급처에서 제공받는 치즈의 단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시장조사나 하다못해 중개상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다. 결론은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는 것이였는데 자신을 반겨주는 직장동료와 훈훈해진 직장 분위기에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무모하게 느껴졌다. 명퇴 후 프랜차이즈에 뛰어든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사업이나 장사를 한 경험이 없는 초보자가 무턱대고 사업을 벌이면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처하느라 급급한 모습인 듯 싶다. 직장인이라면 평생 직장이 사라진 요즘 언제까지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시기는 각각 댜르겠지만 자신만의 사업을 하겠다거나 장사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다. 그에겐 3개월치 병가를 내고 돌아갈 직장이 있지만 우리는 현실을 맞딱뜨려야 한다. 프란스 라르만스는 이제 쉰살을 앞두고 있었으며 그에게는 아내와 한창 자랄 시기인 얀과 이다가 있었다. 4인 가족이 한달을 버텨내려면 고정 수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사업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았는가. 병가는 무급휴가인데다 사업하느라 날린 돈은 회복하기 힘들다. 그가 아내를 껴안으며 흘린 눈물이 이를 대변해준다. 고단한 삶을 벗어날 것 같았던 꿈도 한낱 물거품으로 끝났다. 사업만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소시민들의 삶을 예리하게 쓴 소설이다. 시대를 뛰어넘어서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갖게 되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수입이 끊기면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페이지수도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9990개의 치즈

저자
빌렘 엘스호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5-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 사회와 소시민의 내면을 풍자한 명작네덜란드 문학에서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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