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의 세 번째 슬로북인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함정임 소설가의 에세이로 에피소드 사이에 책갈피를 꽂아두듯 사진을 걸어두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다시 문장을 되새김질 할 때 울림이 컸다. 작가는 세계 도처를 떠돌면서 찍었을 사진과 절묘하게 어울려서 일테다. 그녀가 읽고 영감받은 책 이름과 어느 미술관 또는 어느 박물관에서 보았던 작품명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문학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달맞이 언덕의 서재에서 보낸다는 그녀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다시 띠지에 적힌 이력을 보니 작품 영역이 다양했다. <버스, 지나가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아주 사소한 중독> 등 소설집을 펴냈고, <소설가의 여행법>, <무엇보다 소설을>은 세계 문학 기행집이다.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의 그림 에세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행복을 주는 그림>, <예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등의 번역서까지 펴내면서 지금은 동아대에 제작하며 한국어문학과에서 소설 창작과 서사 담론을 강의하고 있다고 하니 다재다능한 능력이 부러웠다.
인생을 알기도 전에 만난 조이스의 <율리시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카뮈의 <이방인>,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필독서로 손꼽지만 영혼을 사로잡고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은 <마담 보바리>였다. 원서로까지 읽은 <마담 보바리>를 낡은 책장에서 다시 만날 때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빼곡하게 문장, 인물, 화법, 스타일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며 쓴 흔적들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분석하면서 불문학도인 그녀가 소설가로써 글을 쓰게 한 원천이었을 것이다. "소설 쓰는 일이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소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황홀한 순간이었다."라며 문학에 심취한 그녀의 글은 에세이라는 형식에서도 단단한 문장의 힘이 있다. 일상의 기억을 들추며 쓰는 작업 임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책등에 슬로북이라는 카테고리를 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지금 우리는 영상과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가볍게 읽고 소비되는 책에 익숙했는데 이 책은 한 번 읽을 때보다 다시 또 읽을 때 보이는 감정과 문구들이 있다. 그래서 슬로북인가보다.
저자와 함께 떠나는 길에는 항상 그녀가 추천하는 책이 있다. 자신이 읽으면서 영향을 받았던 작가가 살던 집을 찾아갔을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문학 작품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현실을 살아가는 실존자로서의 삶의 모습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라는 제목을 보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창작자로서의 고통이 가진 무게는 상당할 듯 싶다. 글마다 호흡이 있는데 천천히 읽으면서 그녀가 사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싶다. 쉽게 문학을 소비했고 경험을 나누지도 못했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표피적으로만 이해하며 다각도로 파고들지 못한 걸 보면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싶다. 정보라는 파도에 휩쓸려 표류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괜찮다고 물어올 때 쓰는 수밖에 없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글을 씀으로써 현실의 절망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던 지도 모른다. 소설이 다시 삶을 이해하는 창구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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