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넓은 관점에서 보게 해준 윌리엄 번스타인의 또 다른 역작이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정하는 네 가지 조건인 모든 유형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률 시스템, 과학적 방법, 자본시장의 존재, 통신 및 운송 기술로 어느 조건 하나 빠져선 성립되지 않는다. 재산권, 자본시장, 운송 및 통신 시스템, 과학적 합리주의가 완성된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후기산업사회 단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유럽의 예를 들어보면 19세기 중반쯤에도 불법과 무법이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제2천년기 동안 법률, 금융, 운송, 통신 등이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건 산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사회 전체를 바꾸기엔 이를 억제하는 강력한 봉건 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운명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걸까? 정해져 있다면 지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묘사된 중세 시대의 유럽은 문명화된 사회라기보단 종교재판과 살육이 흔했고 거리는 지저분한 오물로 뒤덮인 미개한 수준에 머무른 정도였을 뿐이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은행이나 고리대금업 같은 금융이 발달하고 신대륙 항로를 개척하면서 새로운 작물과 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약탈한 전리품과 금 등이 유럽 경제를 활성화시켰는데 이는 다시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든 사례들이 합쳐서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본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재산권과 자본시장, 운송 및 통신 시스템, 과학적 합리주의가 발달했고 폭발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미국과 유럽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수 천 년간 유럽보다 문명이 앞섰지만 결국엔 개혁되지 못한 아시아·아프리카 문명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 재산권과 자본시장, 운송 및 통신 시스템은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밑바탕이었고 과학적 합리주의로 인해 새로운 기술과 제도가 받아들여져 더욱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그런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교류할 기회가 없는 문명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구 한쪽에선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과 노동이 집약된 사회로 나아가는데 지구의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하는 유목민이거나 농경사회인 채로 머문 것처럼 말이다. 20세기 들어서야 지구 곳곳에서 교류가 일어났는데 수십만 연간 수렵과 채집, 농경사회였던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게 된 것이다.
"국가가 도로를 건설하고, 진료소를 세우고, 댐을 건설하기 전에 먼저 변호사와 판사를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꽃피우기에 앞서서 수십 년 동안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나려면 경제 성장에 집중하여 국가 기반 시설을 재정비하고 재산권과 법이 지켜져야 한다. 자유시장 개혁, 민주화된 사회, 경제제도의 개선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성공적인 롤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크나큰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경제를 흥미로운 시각에서 쓴 이 책은 어렵거나 난해하게 읽히지 않아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인류가 부를 쌓게 된 과정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로 추천한다. 오랫동안 의문을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명시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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