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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세상의 용도



1953년에서 1954년 사이 스위스의 두 청년은 제네바를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을 두루 다니면서 여행을 떠난다. <세상의 용도>는 이 젊은 여행자들의 여행이야기이자 세상에 대한 것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정리한 책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 전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는 기분은 어떨까? 우리는 흔히 여행이 곧 관광이자 쇼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여유나 시간조차 갖을 수 없다. 신나게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관광지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은 특별한 것 같다. 아니 이렇게 진득하게 그 나라에 머물면서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관찰해봐야 얻는 것이 많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을 어딜가나 비슷비슷하지만 전달자 역할을 하는 여행자의 시선과 설명에 따라 우리는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걷기를 좋아하는 내겐 처음 가는 길이 곧 여행이기도 하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내 목적달성을 위한 것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안다. 60여년 전 세상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겠지만 '삶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마 이 책엔 세상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와 경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쓴 저자 덕분에 우리는 마치 그 나라의 특정 장소를 여행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목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어차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글만 읽고 연상하는 데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아니 그 나라에서 직접 부딪힌 것처럼 생생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럼에도 어느 곳을 읽어도 지루하다거나 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얼마나 깊은 사색을 했을까? 


같이 여행을 한 화가가 그린 그림은 하나의 붓에만 의지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남긴다. 어디 어디를 어떻게 여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읽어도 남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세상의 용도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젊어서는 배낭여행을 꼭 해보라고 하는데 못해본 것이 아쉽지만 책으로나마 난 이미 그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들이 간 지명은 구글 맵이나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해보고 또 읽기 시작한다. 언젠가 이 두 청년이 간 나라를 여행할 날을 기약하며. 역시 내공이 있어야 여행기에도 깊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여운을 느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