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수많은 비극과 희극을 읽었지만 정작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었다. 극 중 인물의 대사를 좌우로 배치하여 실제 연극을 관람하는 것처럼 쉽게 읽혔다. 또한 셰익스피어 만의 재치와 유머는 극을 경쾌하게 이끌어주었다. 이 책은 술집 여주인에게 내쫓겨 만취한 몰골로 길바닥에 잠든 술주정뱅이 슬라이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발견한 영주는 장난삼아 슬라이를 영주로 둔갑시키고 감쪽같이 신분을 속이는 데 성공한다. 한편 당시로서도 파격적이었을 자기 주관이 뚜렷한 밥티스타의 큰 딸인 카타리나와 순종적이고 얌전한 성격의 비앙카가 등장하며 본극이 열린다.
아마 말괄량이는 카타리나를 말하는 듯 보인다. 성 정체성에 대한 부분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사회적 통념의 문제인데 셰익스피어는 극중 작품을 통해 실상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가 투영되어 순종적으로 성 역할을 해주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카타리나와 대비되는 비앙카를 보더라도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과 결혼관을 상기시킨다. 사랑-계략-결혼으로 이어지는 서사에서 드러나는 극 중 인물 간의 갈등과 감정은 순간 몰입도 높여주는 전형적인 장치들이다. 카타리나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길들여야만 했는지. 톡톡 튀는 카타리나의 대사들이 귀에 박힌다.
재미있는 점은 애초에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변장시키는 부분은 이 모든 사실들이 허구이며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모든 무대 장치와 연출, 대사들은 당사자를 현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한낱 역할극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한 과정은 다른 사람이 되어 속이는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희극에 속하는 블랙코미디로 봐도 좋을 이야기로 가득한 작품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인데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책장을 술술 넘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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