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이 큰 덕분에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경이로운 바닷속 풍경이 선명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포착되었다. 물은 좋아해도 수영을 배우지 못해서 깊은 물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데 깊은 바다를 보면 자유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수중 마스크 외엔 별다른 수중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크레이그는 시포리스트를 중심으로 바다 깊숙이 들어가 이곳저곳을 항해한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크레이그와 함께 심해 어딘가를 헤엄치는 것처럼 바다 생물을 마주칠 때 찍은 모습은 놀랍도록 화려한 무늬와 독특하게 생긴 모습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바다의 세계가 이처럼 깊고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놀고 추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자. 우리는 종일 바람에 할퀴고 피곤했지만 마음은 평화로웠다. 이 상태에 도달하는 열쇠는 펼쳐지는 상황에 아무 목적 없이 자신을 내맡기는 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몸으로 경험해서일까? 종일 바람에 할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마음은 평화로웠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자연에 자신을 내맡겼더니 오히려 찾아든 평화는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롭게 하는가. 도시에서 살면 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스트레스 받고 힘차게 일을 하며 가열시키고 다시 식히기를 반복하며 산다. 하지만 자연에선 그 무엇도 우리를 통제하지 못한다.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흘러가듯 맞춰서 살기 때문에 하루의 순간순간이 새롭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으니 마음은 바다처럼 고요도 가득 찬 것이다.
크레이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역시 문어와의 교감이다. 야생에서 자란 문어로부터 신뢰를 얻어내고 심지어 사냥에 나설 때 함께 따라가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과연 가능할까? 문어 선생님이라 부르며 시포리스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찾아오는데 동물들이 알아서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니.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한 뒤로는 행동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바다의 숲>은 리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 손을 대도 피하지 않는 물고기라니 환상적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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