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정권이 들어선 아이티에는 브라운 소유의 호텔이 있었는데 도착하던 그날 문진은 없어지고 수영장 한구석에 필리포의 시신을 발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부 첫 장은 아이티로 향하는 메데이아 호 안에서 열 명도 승선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루했었는데 브라운이 아이티에 도착한 후부터는 이야기 전개가 빨라지면서 재밌게 읽혔다. 브라운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떠나고 조제프 홀로 남은 상황인데 현재 아이티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비밀경찰인 통통 마쿠트가 활동하고 있었고, 사회복지부 장관이었던 닥터 필리포가 왜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정확한 사실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 책은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이다. 독재 정권이 들어설 경우 어떤 비극이 벌어질지 예상되는 일이다. 영국식 유머와 블랙 코미디스러운 상황들이 현실을 풍자하며 비꼬는 부분도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메데이아 호에 승선한 브라운, 스미스 부부, 존스 소령은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로 브라운은 냉소적인 성격에 마르타와 불륜을 벌이고 있다. 스미스 부부는 채식주의자이면서 이상주의자로 195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존스 소령은 극단적인 기회주의자이면서 이기주의자다. 소설에서는 이들을 유머러스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가식과 허영은 여과 없이 드러나며 이를 감출수록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정치를 시작할 때는 스미스 부부처럼 이상주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정계에 진출한다. 하지만 정치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커다란 배신으로 되돌아온다. 기득권에 굴복하고 변절한 모습으로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똑같은 모습을 되풀이하는 모습은 정말 무대 위에 각본대로 짜인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는지 이젠 모를 정도로 권력에 눈먼 그들을 보며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도 모른 척 거짓말을 하고 우기면서 어물쩍 넘어간다. 과연 1960년대 독재 정권인 들어선 아이티에 국한된 일일까? 이 책은 정치 속 인간 군상을 풍자하며 코미디와 같은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읽어갈수록 몰입감이 대단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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