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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군중의 망상 : 욕망과 광기의 역사에 숨겨진 인간 본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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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망상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은 인간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인가입니다. 820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이지만 가독성이 좋게 활자도 크고 인문 교양서로써 읽기에 부담은 없었습니다.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사엔 광기로 물든 공통된 키워드가 있는데 종교 분쟁, 종말론, 인종 차별, 마녀사냥, 돈, 부에 대한 욕망 등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맹목적인 믿음은 터무니없는 사실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요아킴과 그의 후예들, 속는 자와 속이는 자, 밀러의 폭주, 성지 템플마운트, 종말론 사업, 휴거 소설, 꺼지지 않는 불꽃 등을 보면 소름 돋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복되어 온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16세기 유럽은 뮌스터를 중심으로 종말론을 믿는 재세례파가 위력을 떨쳤고 17세기 영국에서도 종말론 서사는 고개를 듭니다. 종말론 사업을 보면 현대에 이르러서도 끊임없는 사회 갈등의 씨앗으로 남는데 여기에 어떤 과학적 근거나 진실보다는 교리를 맹신하는 맹목적인 믿음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곧 비극의 역사로 혼란에 빠지게 만듭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폐쇄된 공간이나 어느 집단에 속해 있으면 세뇌당해 이성적 판단이 마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고 절박한 그들의 심리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을 이용한 그 서사는 지금도 반복되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아니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때로는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불어온 주식투자와 암호화폐 투자 열풍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마치 그 시기를 놓치면 부자가 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 망상은 부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의 영웅담도 한몫을 합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대중의 광기가 확산되면 또 다른 고대인의 심리적 충동, 이를테면 자신의 상식과 배치되는 현실을 회피하는 기제가 강화된다."라며 객관적인 지표와는 상관없이 종종 상식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다는 겁니다. 선택의 갈등 속에서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겁니다.

1841년에 맥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기반으로 <군중의 망상>이 나오게 되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당시 사람들과 우린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한몫을 하여 탐욕의 광기가 휘몰아칩니다.

"인간 삶의 놀라운 변화를 약속한 이 신기술 사업은 건전한 토대에서 생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마음속에도 탐욕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광기, 망상,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 버블 경제, 닷컴 버블보다 훨씬 전인 18세기에 남해회사와 미시시피 회사 버블로 인해 버블 방지법이 제정되었고 결과적으로 주식을 통한 투기 활동에 제동이 걸리면서 남해회사가 파산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중의 광기와 그로 인한 파국에 대한 기억은 이내 사라질 것이다. 그럴듯한 신기술과 손쉬워진 신용 완화에 힘입은 시장의 동물적 욕망은 언제든 다시 끓어오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중의 망상>은 역사를 통해 깨닫는다는 관점에서 읽으면 놀랍도록 데자뷔처럼 반복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매한 군중의 집단 심리와 증오심, 욕망은 그릇된 신념과 맹신하는 추종자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사회에 모습을 드러날 때마다 상기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대단히 유의미하고 훌륭한 저작으로 광기에 휩싸인 군중들이 뒤엉킨 표지처럼 지금도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서로 헛발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많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돈과 종교를 두고 벌이는 헛발질을 영원히 반복하리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