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키워낸 매화나무와 백운산을 휘돌아가는 섬진강 줄기가 보이는 자리에 청매실농원이 있다. 하얗게 지천을 물들이는 매화꽃이 장관을 이루고 인산인해 물밀듯 밀려드는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청매실농원 덕분에 매화마을이 생겨났고 자연스레 광양 지역 명소가 되었다. 정자에 앉아 매화나무와 섬진강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시구 하나 건져 올렸으리라. 복잡한 속내는 접어두고 홀로 자연과 보내는 시간만은 고요해진 마음이 평화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마음은 고스란히 시구 하나하나에 묻어져 나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본질만 걸러냈다. 부질없는 욕망의 찌꺼기를 매화 꽃밭에 뿌려두고 좋은 기억만 담고 돌아가는 청매실농원은 앞으로도 봄의 전령사로 사랑받는 곳으로 남을 것이다.
혼자만의 노력과 열정이었다면 고되고 힘들기만 했을 텐데 다행히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로 인해 청매실농원은 빛을 보았다. 시를 읊조리고 매화나무에 핀 꽃을 보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속에 고단함을 씻어낸다. 팔순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해맑은 웃음을 보이는 홍쌍리 명인의 삶이 그녀가 지은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니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자서전이나 에세이도 아닌 자전 시집 낼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매화꽃을 심고 가꾸면서 평생을 일군 덕분에 꾸밈없는 글이 좋았다. 청매실농원이 전국에 알려지 전까지 이름 모를 매실 장인으로 매일 매화나무와 함께 보냈다. 청매실농원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는 이가 드물고 장독대 개수에 압도당한다.
고운 심성 허투루 보내지 않고 시에 옮겨 담았다. 오히려 시집으로 펴냈기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된 느낌도 들었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세월이 아쉬워 뒷걸음치기보단 인생을 마무리할 때 남길 시집을 펴냈으니 여한이 없으리라. 치열한 생존 경쟁은 때론 우리를 턱 밑까지 따라와 숨 가쁘게 만들지만 자연은 언제나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매화꽃 닮은 딸과 매실 같은 아들을 둔 인간 불도저 홍쌍리 명인이 가꾼 매화나무 아래 거름 밥이 되어 나무 한 그루 없던 악산을 꽃 천지로 만들었다. 언젠가 내게도 행복한 날이 오겠지 하며 그 무수한 세월을 오로지 매화와 매실에 바쳤다. 일 년에 한 번 만날 뿐이지만 후회는 없단다. 그렇게 자연에서 얻는 행복은 나를 살리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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