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아는 대로 후한이 멸망할 즈음엔 환관들로 인해 매우 혼탁한 시기였다. 184년 폭정에 시달리던 민심이 폭발하여 장각과 장보, 장량 삼 형제의 기치 아래 50만여 명의 농민들이 봉기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면서 삼국지는 시작된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의 선양이 이뤄지는 220년부터 280년까지가 조위, 촉한, 손오로 나뉜 삼국시대라고 불린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한나라는 그렇게 426년을 유지하다 60년 간 분열하여 군벌들의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난세에 중원 천하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했고 14세기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는 세대불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으로 진수의 역사서인 <정사 삼국지>보다 사실처럼 알고 있지만 물론 창작한 부분이 많다.
삼국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이 아닌 KOEI에서 제작한 전략 역사 시뮬레이션 '삼국지'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수많은 영웅들과 지명들을 익혔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인 줄거리를 꿰찰 정도였다. 이후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소설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이미 아는 내용임에도 <삼국지>는 기승전결이 완벽한 대서사시로 난세에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 다시 삼국지의 무대 위를 밟는다. 이 책은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봤을 일을 실현시킨 저자를 따라 삼국지 현장을 답사한 기행문이다. 증보판은 초반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과 현장의 최근 모습까지 담아내면서 소설 속 <삼국지연의>와 역사서 <정사 삼국지>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삼국지 기행 1>은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209년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손권의 누이동생과 정략결혼을 하는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난세로 혼탁한 시기부터 군벌들이 서로 세력을 규합하여 전투를 벌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맞서 유비, 손권 연합군이 크게 붙는 전투까지 소설 줄거리 상 최고의 클라이맥스인 장면이다. 무엇보다 소설 내용을 따라 넓고 방대한 중국 곳곳을 누비는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생생한 현장을 담은 사진에서 씁쓸마저 느꼈다. 지금도 곳곳에서 역사 발굴이 이뤄지고 있지만 관광지가 된 곳도 있고 버려져 방치된 곳도 있었다. 삼국지라는 콘텐츠에 기댄 느낌도 있었지만 보존이 잘 된 유적을 볼 때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삼국지는 중국의 역사이지만 나관중의 소설 덕분에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시기에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치열한 내전을 벌인다. 삼국지에겐 모든 인간 군상과 처세술, 용병술 등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이 책은 삼국지의 실제 현장을 가봤을 때 어떤 모습인지 소설과 정사의 차이점을 알아봄으로써 고증해 보는 의미도 있다. 허구와 창작으로 지은 소설이 정사보다 유명해져서 실제는 없었던 도원결의나 적벽대전 중 제갈량의 설전군유와 지격주유, 차동풍, 방통의 연환계, 감택의 사향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삼국지 기행> 덕분에 한동안 <삼국지>에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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