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근현대사에 기록될 굵직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때라 8~90년대에 대한 기억은 살았던 동네와 학교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뉴스로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우리가 시대정신을 얘기할 때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그 시대를 대변하여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그 일을 겪어본 적이 없거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만약에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았을까? 훗날 현장을 찍은 영상과 증언, 자료들로나마 진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경계해야 할 것은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음식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술회하듯 풀어내는데 시대의 아픔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는 쉽게 누구나 유튜브에서 과거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을지 아찔하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모르고 자랐지만 이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음식 하나에도 우린 많은 추억들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시간, 공간이 맞아서 제일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먹은 새우 라면과 용광로 김치찌개가 특별한 이유도 힘든 노동과 같이 둘러앉은 먹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였고 그 시대에 허락된 낭만도 한몫했다.
이 책은 음식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는데 글귀에서 느껴오는 따뜻함이 있다. 같은 시간대를 살았지만 생애 주기가 달라 겪은 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가? 사회 통합은커녕 적대적인 분열과 갈등으로 나뉜 때가 아닌가. 경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계 부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 앞에 놓인 악재도 산재해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지방 소멸화, 민생 복지예산 삭감, 물가 상승 등 암울한 소식밖에 없다. 정치판도 그렇고 우리들의 미래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비빔밥처럼 서로 섞이고 어우러졌으면 한다. 지난 일에 대한 과오와 잘못을 반성하고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정치를 하며 반성한 세 가지로 국가주의, 민주주의, 외교를 뽑았는데 공감하는 부분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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