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기까지 영혼의 동반자인 당나귀 '동키 호택'과 함께 걸으며 겪은 모든 일들은 마치 동화 같았다. 동키 호택 덕분에 가는 곳마다 스페인 현지 주민들에게 환대를 받고 지역 신문과 TV에 나가 인터뷰까지 하게 된다. 원래 당나귀는 마을을 오가던 택배 같은 역할인데 낯선 동양인이 당나귀를 데리고 순례길을 걷고 있으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호택이는 마을 사이를 걷는 동안 저자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만 하루 15㎞ 이상 걷거나 배불리 먹지 않으면 특유의 신경질을 부린다고 한다. 위험한 길은 잘도 알아채고 똥고집을 부릴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호택이를 알아가게 되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절로 터득할 수 있었다. 당나귀와의 동행을 유쾌하게 그려낸 이 책은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순례길 중 마을에서 만난 브라질 청년 페드로는 한 달 여행 예산이 60유로로 하루에 겨우 2유로를 쓰는 셈이다. 그런데도 곧잘 여행을 다닌다. 그의 끼니는 매우 간단하다. 파스타 면, 작은 꽁치 통조림, 닭고기 스톡이 전부다. 6끼를 먹을 수 있는 파스타 면 한 봉지가 70센트, 1유로짜리 닭고기 스톡으로 20끼 해결, 작은 캔 6개 묶은 통조림이 1.43유로이니 한 끼에 60센트를 넘지 않는다. 매일 걸을 때는 단백질보다 탄수화물 중심으로 먹어야 한다고 한다. 보통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는 4~50일 정도 예상하고 예산을 잡는데 욕심을 버리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 에피소드였다.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다른 여행기와 다르게 당나귀와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을 현장에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그려냈다.
동키 호택과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예기치 않은 호의를 받았고 어쩌면 고된 순례길이지만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매 순간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아리츠의 레이차 농장을 떠난 지 69일째가 되던 날 아르수아라는 곳에서 호택이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을 때 울어대기 시작한 호택이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시렸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방향으로 걷던 호택이와 저자가 얼마나 많은 정이 붙었을지 생각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맺어 준 인연은 특별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호택이와 함께 입성하는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아리츠와 엘레나 부부에게 도로 건네고 작별할 때는 71일간 길고 긴 여행을 함께 했던 호택이와 헤어진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60살이 넘은 저자는 당나귀와 825㎞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여 <유 퀴즈 온 더 블록>과 <세바시>에 출연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81일간 여행을 하며 경험한 일들을 생생하고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게 썼다. 동키 호택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행은 혼자 걷는 것 같지만 순례자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호택이와 함께 완주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도전 앞에 머뭇거리고 주춤하게 되는데 내게도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에 대한 여운은 오래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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