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왜 '천 개의 베개'로 지었을까? 은유적인 표현으로 높은 산 중턱에 오르면 펼쳐진 구름을 보고 지은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 궁금증이 풀렸다. 평생 누려도 다 누리지 못할 천 여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일컫는 말이었다. 2024년 기준 현재까지 지정된 문화유산이 933개, 자연유산이 227개, 복합유산이 39개이니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계유산으로 여행 다녀도 시간이 모자를 것 같다. 집을 나선 뒤 길 위의 여행자가 된 저자는 남아메리카, 튀르키예, 라오스, 타이 등을 다니며 흔히 알려진 곳보다는 다소 생소한 도시나 지역을 중심으로 잘 보존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자원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저자는 길 위의 여행자로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고 경험하는데 할애한 셈이다. 그가 부러웠던 것은 젊음 보다 주저 없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머물 수 있는 용기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을 텐데 머무는 동안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어쩌면 평생 오지 못할 곳에서 색다른 경험도 해본다. 아름다운 경치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에 압도당하면 잠시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감격해서 눈물이 흐르듯 그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지구에 태어나 잠시 머물다 갈 뿐인 우리인데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생각이 들면 이런 여행 에세이는 잠시나마 가보지 못한 나라로 데려가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여행 에세이보다 달랐던 지점은 글을 굉장히 담백하게 풀어간다는 점이다. 너무 들뜨지도 않고 정보성 위주로 나열하듯 전달하는 것이 아닌 여행지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보고 느낀 점들을 사색하듯 문학 작품 중 일부분을 발췌해 싣는 등 풍부한 상상력으로 각인되도록 했다. 애초에 관광객으로서가 아닌 길 위의 여행자로 자연스러운 만남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서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았다. 여행 끝에는 카메라 셔터에 담은 사진과 함께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다. 배낭여행자로서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해 여행이란 연금술로 얼마나 많은 자산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누구보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날에 받은 호의와 은혜를 보답할 길 없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길에서 받았던 호의와 은혜를 갚는 법은 지금 만나는 여행자를 환대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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