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란 무섭다.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되어 있으면 무슨 의도로 어떤 일을 했든 과대하게 포장되거나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인물들은 책이나 발췌된 문헌에서 본 그대로의 이미지였는지 이제서야 역사를 뒤집는 책들을 읽게 되면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을 <찌질한 위인전>으로 지칭했지만 사실은 책에 수록된 11명의 위인들의 잘 알려져 있거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편견없이 들어본다는 점으로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각 인물들에게 빠져들었고 그 어느 누구보다 멋지게 살 것 같았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고 때로는 시대를 뛰어넘었으며,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그리고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자면 <찌질한 위인전>은 인문으로 분류되는 책임에도 너무나도 재미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역사나 인물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탁월한 이야기 전개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만큼 고루하지 않아서 굉장히 좋았다.
이 책에는 외전까지 포함해서 11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김수영, 빈센트 반 고흐,이중섭, 리처드 파인만, 허균, 파울 괴벨스, 마하트마 간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스티브 잡스, 달빛요정만루홈런까지 동서양과 현대사를 가리지 않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인물들이다. 이 중에서 그래도 대학교때 좀 읽었다고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대략 알고 있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티브 잡스 정도 내가 아는 범위에 속한다. 조선 최고의 화가였던 이중섭의 삶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가난에 찌든 삶을 오랫동안 살았던 건 아니다. 그가 살았던 원산에서 할아버지가 일군 사업이 크게 되어서 30살에 정신분열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통해 물려받은 가업을 장남인 중석이 사업을 잘 번창시킨 덕분에 중섭은 30세까지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갔으면 미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즉,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누렸던 것이다. 근데 문제라면 중섭이 태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갔고 태어났을 때는 줄곧 아버지 없이 어머니 손에 길러져서 모성이 강했다는 점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중석은 부르주아 집단은 공산당에게 지목을 받아 처형을 당하게 되며 집안의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였다. 홀로 가정을 이끌어야 했던 중섭은 아내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는데 생계를 이끌어갈 능력도 없었던 중섭은 반 거지처럼 제주도로 내려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가 늙은 어린아이 같았던 것은 작품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굵직한 현대사를 이어오면서 이중섭은 불행하게도 정신분열증 등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것은 예술계에서는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그에게 돈을 관리해줄 매니저나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그런 비극이 찾아오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때로는 어느 시대에 태어나느냐 따라 빛을 발하기도 하고 일찍 꺼지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작가의 식견과 명확하게 꼬집어내는 문장력은 탁월했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아보고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애썼고 책 속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책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최초의 한글소설이자 혁명이 담겨있는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선의 천재 허균에서였다. 선조 때 '허씨 5문장가'로 알려진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허균은 특히 특출나게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머리가 비상하였으면 명과의 외교에서도 다른 이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지식을 갖춘데다 엄청난 독서량과 암기력을 갖췄다. 하지만 경직된 조선 사회에서 허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였다. 유학, 성리학을 숭상시 하는 조선에서 불교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면 성리학 외 다른 학문은 도외시되었던 시대였다. 전란 후 더더욱 피폐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과의 괴리감은 굉장히 컸으며, 실제 삶과는 무관한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지금과도 허균같은 존재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안타깝다. 그의 친누이인 허초희(난설현)가 남자보다도 뛰어난 학문을 지녔음에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출세길이 막히고 자신의 재능을 발산한 기회도 없었다. 더더구나 서얼 집단에 대한 차별은 조선의 폐쇄성과 경직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는 자신의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광해군과 정권의 실세였던 이이첨에게 접근하였지만 정권을 전복시킬 일을 모의하고 계략을 품던 중 기준격의 발설로 인해 모두 물거품으로 끝나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그 당시 시대상황이 이해되면서 허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절박함이 느껴진다. 누가 과연 괴물이었던 것일까? 체제와 권력쟁탈에만 신경을 쓸 뿐 무능력했던 조선에선 천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와 그릇도 안되었던 것이다.
읽다보면 그 인물에 집중되어서 모든 정황들이 머릿 속에 그려졌던 것 같다. 사실 위인들의 맨얼굴을 알고나면 그들도 사람인데 특별히 다를 게 무엇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후에 그들이 세상을 통해 만들고자 했던 것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재밌게 읽은 책으로 역사와 인물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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