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시와 소설에 나온 문장을 자신의 손으로 옮겨적는 일인데 마음 먹은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고등학교까지 나닐 때만해도 정성들여 글을 쓰곤 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자판을 치는 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점점 악필이 되어간다. 손글씨 3급 자격증도 땄었고, 주변으로부터 글씨를 잘 쓴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이젠 글이 날림이다. 글을 쓰는데 힘이 없고 뭔가를 자꾸 빼먹는다. 책에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제 정성을 다해서 한자 한자 내 마음을 담아본 적이 있을까? 마음필사는 말 그대로 이미 인쇄된 책 내용을 손으로 옮겨적는 것이다. 이제 아주 오래 전 일이 되버렸지만 신약성경을 마태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 그 많은 페이지를 손으로 옮긴 적이 있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쓰다가 헷갈려서 밀릴까봐 다시 확인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쓰다보니 손가락에 물집도 잡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펜을 꾹꾹 눌러서 글씨가 틀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는 고도의 작업인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풋풋했던 옛 감성을 되살려준다는 점에 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 속 구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해준다거나 아니면 빈 종이에 적어 두고두고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글을 보면 쓰는 것도 손의 기억을 따라 마음이 담긴다는 의미가 전해질 것만 같다. 글은 쓰다보면 저절로 외워진다는 말을 학교 다닐 때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영어 단어 외우겠다고 수십번 흰 여백이 까매지도록 계속 단어를 쓰곤 했다. 이 책은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좋은 문장과 시들이 왼쪽 페이지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책에서 발췌한 문장들 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어서 옮겨 적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은 자꾸 손으로 써야 제 맛인 것 같다. 글로 뭔가를 쓴다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아름답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어떤 의미로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책들이 나와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는 하는 것 같다. 약속시간에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마음필사>를 펼치고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글씨는 자신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마음을 올바로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글은 역시 많이 써야 좋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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