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잘 알려진 고전 명작으로 손 꼽히는 책이 <어린 왕자>로 완독한 적은 없어도 책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시중에도 이미 다른 출판사들과 번역가들이 만든 동명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 상황이다. 새움출판사에서 나온 <어린 왕자>를 읽으면 벌써 세 번째로 작품을 읽게 되는 셈이다. 같은 <어린 왕자>인데 출판사와 번역가가 다르다보니 각각 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불리우는데 새움출판사를 통해 나온 <어린 왕자>는 확실히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매끄럽게 읽히는데다 문장의 어색함이 없어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 조종사는 어느 날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고,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인 B612와 행성을 여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종의 비유라고 보면 되는데 비행 조종사는 6살 때 그림을 그렸다. 어른들은 그 그림을 보고 모자라고 했지만 실은 그 안에 보아뱀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아이와 어른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해석이 서로 다르다는 걸 명확하고 일관성있게 씌여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실측가능한 숫자로 말해야 이해를 한다거나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 사느라 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별을 볼 여유조차 잊고 살아가는 존재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서 찾는다.
"어른들은 내가 안에 그린 것이든, 밖에 그린 것이든, 보아뱀 그림은 제쳐두고 대신 지리, 역사, 수학, 그리고 문법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나이에 화가로서의 멋진 경력을 포기해 버렸다." - p.16
아마 육아를 하는 사람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어른들의 기준이나 잣대로 길을 정해져버리면 아이는 꿈을 키울 수 없다. 어릴 때는 그 아이가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 모르는데 이미 갈 길을 정해놓고 부모의 뜻대로만 특정 직업을 위해 가야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이가 가진 꿈이나 하고 싶은 일들을 곁에서 찾아줘야 할 소중한 시간들이 조기유학과 학원생활로 대체되고 있으니 말이다. 저무는 석양과 밤하늘의 별빛을 우러르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꽃 한 송이에게 인사를 할 수 있을만큼의 감수성이 사라져 감을 생텍쥐페리는 안타까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왕자는 차례대로 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이 나온다. 왕, 자부심이 강한 남자, 술꾼, 사업가, 가로등 지기, 지리학자들인데 모두 어린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처럼 작다. 이들을 만나면서 어린 왕자들은 행성을 떠날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 한다. "어른들은 확실히 완전히 특이해." 어린 왕자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사는 세계는 정말 따분하고 쓸데없는 일에 집착할 뿐이다. 한 번 질문한 건 대답을 들을 때까지 되풀이하는 어린 왕자가 보기엔 권력욕이 강한데다 집착하는 왕, 모든 것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남자, 술 마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술을 마시는 술꾼, 숫자에 집착하며 애정을 쏟아붓지도 않을 행성을 사 모으는 사업가, 충실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지만 행성이 작아서 1분마다 가로등을 켰다 껐다하는 가로등 지기,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전부일 뿐인 꽉 막힌 지리학자 등 부끄러운 어른들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어린 왕자는 마지막으로 지구라는 행성에 찾아온 것이다. 그 행성에서 사막 여우를 만나는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길들이기 전에는 수많은 사막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 친구가 되어주고 길들일 때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사막 여우가 된다는 내용은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랄수록 순수했던 마음, 그때 가졌던 상상력은 퇴색되어 점차 잃어가는 건 아닌지. 아이와 어른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 얼마나 다른지가 이 책의 핵심인 듯 싶다. 비행 조종사가 어린 왕자에게 양을 그려줄 때도 그냥 이 정도면 양인 것 같은데 어린 왕자가 보기에는 병들었거나 늙었거나 뿔이 달린 것은 자신이 원한 양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결국 고심하다 구멍 3개가 뚫린 상자를 그려준다. 그 속에 양이 들어 있다고. 상상력은 바로 무언가를 마음판에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새로웠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꽃과도 말을 걸고, 사막 여우나 뱀하고도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휴화산 2개와 활화산 1개 그리고 장미 꽃 한 송이가 있는 작은 소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는 꼭 비행 조종사의 여섯 살때 모습과 닮아 있다. 그 때는 무엇을 그리든 상상력이 많았고 생명체가 아닌 인형하고도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순수성을 담은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고 한다.
"하늘을 보라. 자신에게 물어보라. '양이 그 꽃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 당신들은 모든 것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어른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 p. 137
어린 왕자를 만나고 사막에서 겨우 구출받아 집으로 돌아온 비행 조종사는 이렇게 말을 끝맺고 있다. 어른들은 '양이 그 꽃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이해하거나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른들은 사업가처럼 평소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느새 훌쩍 커버려 어른이 될 때쯤 그 때 감수성과 상상력을 잃어가버린 점을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왠만한 것을 보고는 감동을 받지 않을만큼 무뎌져 버렸고, '양이 정말 그 꽃을 먹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만큼 세상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나와 마주하게 된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 B612를 볼 수 있을까?
앙투안 마르 드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을 다시 읽으면서 정말 세대를 뛰어넘는 고전이란 변치 않는 고유의 메세지성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왕자 덕에 알게 된 바오밥나무와 사막 여우, 보아뱀, 금빛 목도리를 두른 어린 왕자의 모습. 그렇게 각인된 이미지는 출간 된 후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보편적인 언어로 씌여졌기 때문에 대를 이어서 사랑받는 책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다른 책보다는 훨씬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잘된 번역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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