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로부터 예술 후원을 받아 베니스로 떠나게 된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 전수민은 프롤로그이자 유서 편지를 남기며 그렇게 떠난다. 시작은 시도가 좋았다. 독자들로 하여금 왜 유서를 남기게 되었는지 궁금즘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아직 젊은 그녀가 곧 죽게 될거라는 말을 쉽게 남길 수 있는지.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멀고 먼 이탈리아의 미항 베니스에 자리잡은 스튜디오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곳은 한국인 킴이 운영하는 곳으로 다른 사람도 곧 입주하게 될거라고 한다. 이곳에서 한 달간 지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먼지 하나없이 깔끔한 방과 작업실은 내 마음에도 꼭 들었다.
특이하게도 스튜디오의 규칙은 나이와 상관없이 경어체를 쓰기로 한 것이다. 서로 평등하게 대할 수 있으니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줄이고자 한 듯 싶다. 그녀는 스튜디오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필사적으로 한식을 먹고, 한지에다가 작업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주변 마트에서 쌀을 구할 수 있었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도 가득했다. 베니스라는 도시가 관광객 뿐만 아니라 예술가에게 수많은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라고 느낀 건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그 풍경을 자유롭게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산타루치아 역 부근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여기라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이 아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것만 같았다.
화가 전수민은 멋지게 찍은 사진만큼이나 많은 작품을 그렸고 스케치를 해두었다. 종잡을 수 없는 이탈리아산 물감에 고생했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경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스튜디오에 입주한 친구들과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던 베로나에 가보기도 하고 그곳에서 오래전 검투사들의 경기장이었던 장소에서 오페라 공연을 감상한다. 원형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아름답게 울리는 선율과 베로나의 야경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스튜디오의 유일한 화가인 그녀는 오픈 스튜디오를 열고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곳에서의 경매를 해 얻은 수익은 한국으로 돌아가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기로 하고 영수증을 페이스북에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한국으로 떠나기 싫은 마음이 든 것은 한 달간 친해지고 정든 친구들과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셨지만 꿈만 같던 베니스에서의 한 달이 아쉽기 때문이다. 그녀가 베니스에서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만일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하곤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을까? 내게도 그녀가 남긴 기록들을 읽으면서 베니스라는 곳이 작품활동에 좋은 영향을 주었고,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오래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사람의 진면목을 서서히 알게 되고 그 내면까지 볼 수 있으니.
새움출판사에서 오랜만에 나온 에세이였는데 글은 따뜻하게 보듬고 사진과 그림으로 남긴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일상처럼 눈으로 보는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러움 섞인 마음을 갇게 만들었다. <오래 들여다 보는 사람>은 이렇듯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은 우리들이 각자 고민하는 삶을 공유하며 베니스의 생활을 예쁘게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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