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겨울잠을 지나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 따스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이 등 뒤로 내리쬐는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 같다. 무무 작가의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만 챙길 줄 알았던 이기적인 마음도 이 책에서 들려주는 68개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 어딘가 갑자기 뜨거워지고 울컥이게 될 것이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인데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무언가를 일깨워주기 때문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듯 싶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특별하고 보석처럼 빛이 난다.
오랑우탄의 피로 악귀를 물리쳐야 한다는 노인이 알려준 치료법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사냥길에 나선 사냥꾼은 늙은 어미인 오랑우탄을 발견한다. 어머니를 위해 오랑우탄을 사냥하려던 순간, 그 오랑우탄은 천천히 자신이 남은 모든 것을 주겠다는 듯 새끼에게 젖을 다 나눠주고 잎으로 그릇을 만들어 그 위에 모든 젖을 다 짜내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사냥꾼은 차마 오랑우탄을 죽일 수 없었다. 오랑우탄이 보여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동물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성애를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진실한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한다.
책에 있는 에피소드를 다 소개하고 싶지만 맨 처음에 나온 꿈을 간직한 왈츠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미 야생동물보호협회에서 일하던 사람이 험난한 여정을 지나 중국 하이난 섬의 작은 어촌에 들렸을 때 이야기다. 그곳의 허름한 집에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고단한 여행에 지친 일행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부모님을 따라 간 홍콩의 파티에서 왈츠를 추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그 남자는 "아직도 왈츠를 배우고 싶으세요? 지금 여기서 어떠세요?라고 말하며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강> 선율에 맞춰 춤추기 시작하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꿈을 간직하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비록 내 처지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누구나 일생에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고, 그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이런 기적같은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모르기에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바로 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할 때 마음이 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참 가슴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다. 이처럼 봄날에 어울리는 에세이로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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