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니 90년대 초반부터 모든 컴퓨터 기종을 두루 사용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주말이면 용산전자상가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 곳에서는 새로 출시된 게임이나 고급 컴퓨터나 전자기기를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울펜슈타인 3D나 프린세스 메이커 2를 5.25 플로피 디스크에 백업을 받기도 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날로 발전하는 컴퓨터와 게임으로 인해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내가 군복무를 하던 시기에는 수많은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들이 난립하던 시기였다. 야후, 라이코스, 엠파스, 다음, 알타비스타, 심마니 등이 있었는데 아직 네이버나 구글이 나오기 전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몇몇 업체들이 독점하면서 정리가 되었다. 통신업체도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어느새인가 3개 업체만이 남게 되었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과 기술 발전에 따라 기업들이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면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읽다보면 반가운 이름들이 나온다. 90년대 후반 사이버 가수라는 이름으로 아담이 나왔을 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3D 모델로 제작된 아담이 신기했고 마치 미래 시대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2집 후 사라져야 했다. 그보다는 1집 타이틀곡이 굉장히 좋아서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1975년에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호황이던 필름에만 주력했던 코닥이 몰락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역사와 한 때는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도 망했다.
지금 포켓몬 GO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국내에서 이미 2011년에 올레 캐치캐치가 AR 게임의 시초였다니 굉장히 신선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이용자들에게 외면받고 서비스를 종료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킬러 캐릭터 수가 부족했다. 닌텐도의 포켓몬은 이미 많은 수의 IP를 보유하였고 이로 인해 이용자들이 질리지 않고 이용함으로써 큰 인기를 구가할 수 있던 것이다. 93년에 등장해서 야겜의 열풍을 몰고온 <동급생>의 제작사인 엘프가 문을 닫고 카카오톡에 앞서 존재했던 수많은 메신저들이 자취를 감췄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유서깊은 게임 제작사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금 사정과 내부 인력 유출 등으로 인해 거대 업체와 합병을 하거나 문을 닫게 되는 걸 보면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건 아무래도 내가 걸어온 시간과 함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블루스크린>을 읽으면서 잠시 잊었던 그 시절의 IT를 상기시킬 수 있었고, 문을 닫게 되었지만 이런 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IT는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발전된 혁신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불과 30년 남짓된 시기 동안 쉴 새 없는 변화가 있었고 이 책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유지될 수 있음도 알게 된 것 같다. 내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그 시절로 떠난 추억 여행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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