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으로 세계 각지의 지폐를 만나볼 수 있는 건 매우 즐거운 경험이다. <지폐의 세계사>는 42개국의 지폐를 소개하면서 지폐에 얽힌 탄생 비화를 흥미롭게 써나간 책이다. 저자는 직접 현지를 돌며 지폐를 수집하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예술 작품 수준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된 지폐를 보았을 때였다. 1~2도가 아닌 올 컬러로 디자인된 지폐는 환상적이었다. 한 인물을 위주로 지폐 디자인을 한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고야를 들 수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인 고야가 남긴 작품을 지폐 단위마다 디자인한 점이 그 예이다. 단순히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지폐에 넣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경제를 상징하는 모습부터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디자인된 지폐들도 많다는 점이다.
"지폐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다!"라는 말 그대로 그 안에 담긴 역사의 진실을 알고 나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대립하며 여러 차례 쿠데타로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2004년 부룬디는 액면가 10,000부룬디 프랑 지폐를 발행하면서 민족 화합을 실천했던 투치족인 르와가소르 왕자와 후투족 출신으로 최초의 대통령이 된 은다다예를 새겨 넣으면서 두 민족 간 진정한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처럼 지폐는 정치적인 목적도 함유하고 있다. 변경된 도안을 발행할 때의 지폐 디자인을 보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지폐는 시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지폐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폐의 기능을 뛰어넘어 중요한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폐를 보면서 세계사의 이면을 들을 수 있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혹시라도 세계 지폐를 만질 기회가 있다면 유심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25년간 여행하며 기록한 저자처럼 열정적이지 못하겠지만 그 안에 얽힌 사연과 놀랍도록 아름다운 디자인을 볼 때면 전과는 다른 느낌일 듯싶다. 더 많은 세계 화폐들을 보려면 세계화폐박물관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국의 모든 지폐가 실려있지 않지만 아름다운 지폐 디자인을 볼 수 있어서 마치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지폐로 문화와 역사를 배워나갔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