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워지는 여름철,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 등골이 서늘해져서 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다. 항상 의문의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 빛나는 구라치 준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의 표지 그림을 봐도 이해하기 힘든 기묘함이 느껴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부드러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려서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이 책은 'ABC 살인', '사내 편애',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밤을 보는 고양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등 중·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작품마다 주요 소재가 독특했고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었다.
'ABC 살인'은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살해 지역과 피해자의 이니셜을 알파벳순으로 절묘하게 연결 지었다. '아오하라(A)에서 아사미네(A)가 살해되고, 반쇼지초(B)에서 바바(B)가 살해되었다. 내 동생 다카시의 성은 '단다'이고 '도가야'에 살고 있다.' 주인공은 알파벳 순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완전 범죄를 꿈꾸며 C에 해당하는 자를 물색한다. 그래서 찾은 곳이 주오히가시초 코퍼헤이와 105호에 사는 지구사 다다시였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단지 목적을 위해 잔인하게 망치로 내려쳐 박살 상태로 죽인다. 실제 범인과 동일한 수법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로 D 동네에 사는 이니셜 D를 사람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앙심을 품고 동생을 죽일 계획이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초반에 나오는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말한 주인공의 생각이 괴기스럽게 느껴지면서 자신도 다음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던 걸까?
'사내 편애'는 '종합식 기업인사 관리운영총괄시스템'이라는 '마더컴'을 각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새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전체 사원을 관리하고 인사 전반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등 사실상 기업 운영을 의탁하는 방식이다. '마더컴'은 '모더레이트 플리커 메소드식'이라는 프로그램을 탑재하여 모든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관리하면 합리적으로 시스템이 돌아갈 것 같지만 '마더컴'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한 사원을 편애하기 시작한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마더컴' 절대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전무가 말단 사원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도 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사사건건 관여한다. 막강한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면 이에 종속된 사람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퇴사한 뒤 합격할 것이라고 확신한 어느 기업 면접 자리의 첫 대면에서 불합격 사유를 듣게 되는데 그 이유가 참 신박하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도 쉽게 결말이 나지 않은 사건이다. 평소 케이크를 좋아하던 피해자는 파티시에를 양성하는 전문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 살인 현장에서 그녀는 싫어하는 하얀 대파를 입에 문 채로 누워있고 머리맡에는 편의점에서 산 케이크 3개가 놓여있는 기묘한 형태였다. 누가 왜 어떤 동기로 죽인 것일까?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부분들과 함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필체로 인해 이건 뭐지 하면서 읽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라'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을 야유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밀실 상황에서 죽은 병사가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아도 믿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렇듯 구라치 준의 작품은 패러디, 바카미스적인 트릭, SF적인 설정 등 다채로운 작품 세계에 흠뻑 빠지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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