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며느리가 돌아가신 시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정글 형식을 띄고 있다. 한 편으론 시그널처럼 키에르케고어의 고향인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젊은 날의 시아버지가 1978년부터 1979년에 걸쳐 보내온 엽서를 받아든 느낌이다. 평생을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을 추구하며 알아주는 으뜸 권위자였던 표재명 교수를 일대기의 흔적을 가족이 함께 엮어서 만든 독특한 책이었다. 덴마크 여행기라기보단 끈끈한 가족애와 삶을 치열하게 살며 고민했을 한 철학자가 가진 고민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책 곳곳에 담겨있다. 그 당시 덴마크 사진엽서를 보는 맛도 있지만 가족끼리 주고받은 글과 편지를 읽는 맛도 새롭다. 아날로그 감성이 글에 묻어 나와 잠시 옛 향수에 젖어보는 기분도 살짝 느꼈다.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는 지금도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곳인데 타향에서 2년간 유학을 보냈을 아버지는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지금처럼 화상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 SNS도 없던 시절이라 오로지 종이 위에 펜을 꾹꾹 눌러써서 보낸 글에 자신의 생각이 또렷하게 읽힌다. 키에르케고어는 누구길래 평생 그의 철학을 연구했을까? 그는 현대 실존 사상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주체적인 진리를 주장하였다. 절망의 심연 앞에 서 있는 실존을 미적, 윤리적, 종교적 3단계로 구별하여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살아가는 삶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의미 있게 살기를 바랐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고 하는데 가족에게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리 근현대사에 얽힌 일들과 덴마크 곳곳을 누비며 쓴 글, 다수의 사진과 그림만으로도 뜻깊은 책이다. 비록 키에르케고어를 모르더라도 한 철학자의 삶을 뒤밟아가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서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감각적인 것을 쫓으며 피상적으로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은 이제 고루한 옛 유물 정도로 취급하며 철학자는 실존하지만 정작 철학의 존재감은 상실해가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 시절을 회상하며 아득한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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