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에서 읽었거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보던 역사의 현장을 내디뎠을 때 숨죽인 채 지켜봐야 했다. 어디선가 그날의 절규와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분명히 땅 위에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들고 일어났던 선조들이 보인 울분과 아픔, 상처받은 시대의 눈물이 잊지 말라는 당부를 하듯 흔적을 찾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허락되지 않지만 만약 동학 농민혁명이 없었다면 폐정개혁안에서 밝힌 신분제 폐지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사상이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혁명적인 역사엔 늘 민중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는 길은 피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과 동시에 잊지 않고 기억해 내는 일이다.
이 책은 역사의 현장을 순차적으로 밟아나가면서 배경을 알아나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첫 시작은 동학 농민혁명의 시발점인 전북 정읍의 배들 평야로부터 출발한다. 천주교 병인박해 순교성지, 진주 형평사,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터,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터, 동두천 미군 기지촌, 광주 대단지 사건과 용산참사 현장, 백사마을 등 한국 현대사의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힌 현장을 저자는 직접 찾아 나섰고 사진에 담아냈다. 사실 남아있는 자료나 영상을 봐도 믿기지 않았다. 일부러 기억을 지워 외면하려 해도 이미 일어난 사실과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후대를 이어 기억하고 보존하는 한 우린 언제든 절규 어린 외침으로 부르짖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는 한국현대사 인권기행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일종의 현대사 답사기다. 깊은 상처를 도려내듯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고 사실 믿어지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니 태어나서 굵직한 역사를 지나왔다는 사실에 큰 괴리감을 느꼈다. 동네 친구들과 놀며 지내는 동안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6월 민주항쟁 등 이젠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역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건 가난했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어딘가에선 수용시설에 감금된 채 인권을 유린, 박탈당하고 노예처럼 하루 종일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어디 묻혀버릴 일인가? 반드시 실체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이젠 폐허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서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잠잠하고 침묵 속에 방치되었지만 진실을 숨길 수는 없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목격자들이 전하는 목소리에 진실이 담겨있듯이 우린 반드시 기억해 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데 이 책을 통해서라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 우리는 그들 덕분에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라고. 단지 평등하게 살고 싶었던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읽을수록 더 이상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근현대사 역사투어로 반복해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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