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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한 달 후, 일 년 후

 

한 달 후, 일 년 후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1957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참극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은 때인데 <한 달 후, 일 년 후>에 등장하는 9명의 남녀가 주고받는 사랑과 젊음의 덧없음을 저자는 냉소적으로 표현하였다. 작가 지망생인 베르나르는 이미 결혼하여 니콜이라는 착한 아내를 두고 있지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권태기에 빠져있다. 한때 사랑에 빠졌던 조제를 잊지 못해 밤늦은 시각에 전화를 걸기까지 한다. 조제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25살 여성으로 연하의 의대생인 자크를 남자친구로 두고 있다.

매주 월요일, 월요 살롱이 개최되는 알랭의 집엔 베르나르, 니콜, 조제, 베아트리스, 알랭, 파니, 에두아르가 참석해있는데 알랭 말리그라스는 아내인 파니보다 베아트리스를 사랑하고 있다. 알랭 말고 베아트리스는 흠모하는 경쟁자가 더 늘어났는데 연극 연출가인 앙드레 졸리오와 알랭의 조카인 에두아르라는 청년이다. 처음엔 월요 살롱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에두아르가 베아트리스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마음을 움직였지만 졸리오가 등장하면서 그와의 만남을 귀찮아하게 된다.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는 관계인데 이미 가정까지 꾸린 유부남인 베르나르와 알랭은 왜 조제와 베아트리스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곁에 있는 아내를 사랑해도 모자랄 텐데 한때 연인 관계였던 조제가 임신 중에 지독한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니콜을 대신해 베르나르를 데려오기 위해 그를 찾아갔지만 그와 호텔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다. 사랑에 대한 집착은 곧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언제까지 우린 젊을 수가 없고 불타오르던 사랑도 꺼지게 될 테니.

조제와 베아트리스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등장시킨 것도 어쩌면 잊혀가는 청춘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 같다. 둘 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프랑스의 고전 비극 작가인 라신의 희곡 '베레니스'의 대사를 다시 곱씹어 보자.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하는 고통은 한 달 후가 되었든 일 년 후가 되었든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과 젊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주인님, 드넓은 바다가 저를 당신에게서 갈라놓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베레니스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날이 다시 시작되고 끝났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