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연극을 관람했지만 동성애를 다룬 내용을 결코 쉽지 않은 소재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것은 물론 관객을 설득시키기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연극, 뮤지컬, 영화로 발표되었는데 이를 스핀 오프시켜 <줄리엣과 줄리엣>으로 선보인 것이다. 즉, 몬테규 가의 줄리엣과 캐플렛 가의 줄리엣이 무도회장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지금보다 훨씬 도덕적 규범이 엄격했던 중세 시대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이를 작가 만의 상상력을 더해 원작을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이 희곡집 에세이는 대본과 에세이를 결합하여 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고전 명작을 재해석한다는 건 위험 부담이 큰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퀴어 소재라니 창작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과연 몇몇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 만족했을지 궁금하다. 아주 오래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연극을 보러 갔다가 사실은 동성애를 다룬 내용이라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충분히 관객들이 용인할 수 있도록 설득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다.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미화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개연성과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작품에서 드러나야 한다.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란 귀족 명문가의 아가씨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로에게 반해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까지 약속하니 말이다.
<줄리엣과 줄리엣>은 2018년 3월 21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첫 초연을 한 뒤로 2021년 10월 21일 브릭스씨어터에서 4연까지 할 정도로 성공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극으로 끝난다는 건 같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여자 간의 사랑으로 승려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살짝 코믹스럽고 연결 다리 역할로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대본도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로 바꿨다. 만약 소극장에서 이 무대를 관람했다면 소재를 알고 있음에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열연과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어서다. 그 대상이 반드시 이성일 필요는 없으며, 진짜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에 솔직해지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다큐로 받아들이느냐 연극적 상상력을 남을지가 관건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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