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에 오른 음식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외교에서 음식이 가지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이 책은 음식 외교에서 기억될 27가지 모습을 담았다. 외교 현장에서도 음식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았고 새로 알게 된 사실들도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달콤한 외교, 깊은 풍미의 외교, 스토리가 있는 음식 외교, 역발상 음식 외교, 씁쓸한 외교, 독한 맛 외교로 분류하여 만찬장에 오른 음식과 음식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음식 하나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가져오거나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는 듯싶다. 아직까지도 옥류관에서 먹은 평양냉면의 명성이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음식 선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음식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건 우시바 노부히코 주미 일본 대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했는데 독일 출신이지만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비너 슈니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미 국무부 내 일본전문가로부터 우시바에 대한 정보를 들은 키신저는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미일 간 외교에도 악영향을 끼쳐서 소원한 관계가 된 것은 물론이다. 눈치 없는 음식 외교가 상대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시바 사례가 바로 일본 외교의 실상을 드러냈는데 요즘처럼 음식과 식기, 장식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며 상대국을 대접하는 시대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져서 음식 외교를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부분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셰프들과 의전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분주하게 상대국과 초청받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여 만찬장에 반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국가 간의 외교는 국익과 안보가 직결되는 현장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미 역사로 남은 외교 현장을 기록하며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시의적절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음식으로 인해 외교적 승리를 가져오거나 관계가 악화되는 등 음식과 외교가 이렇듯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음식이라는 소재가 세계 역사의 외교를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해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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