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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희망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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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희망의 끈>은 추리소설 물로 읽히기보다는 가족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가가 형사가 등장하고 경시청 수사 1과 형사인 마쓰미야와 하세베가 '야요이 찻집 살인사건'을 밝혀내기 위해 탐문 수사를 벌이지만 본질에 접근하면 불행한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책 중반이 넘어가는 동안에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하나즈카 야요이, 시오미 유키노부, 와타누키 데쓰히코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하는 내용이 계속 이어진다.

프롤로그에서 다룬 시오미 유키노부 가족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지진으로 두 아이를 잃으면서 가족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시오미 유키노부의 아내인 레이코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와타누키 데쓰히코의 전처인 하나즈카 야요이도 그렇고 와타누키 데쓰히코와 동거하던 다유코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요시하라 아야코의 어머니인 마사미조차 비슷한 동기를 가졌는데 아마 <희망의 끈>이 대를 이어줄 아이였던 것은 아닐까?

이 책에는 나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불행한 가족사를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두 아이를 잃은 후 시름에 빠져 살던 시오미 유키노부는 레이코가 불임치료를 하면서까지 모나를 얻었지만 모나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몇 달 전에 백혈병으로 죽는다. 다유코도 아버지의 횡령과 이혼, 외가 할머니에게 자라면서 불장난으로 중절 수술을 받고 회사에 취업한 후 또다시 원치 않은 중절 수술을 받아 정작 아이를 갖고 싶을 때 임신이 어렵게 된 것이다.

요시하라 아야코는 조금 복잡한데 '다쓰요시' 료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물론 요시하라 마사쓰구가 적은 유언장에서 파생되어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가 큰 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위해 헌신을 하며 '다쓰요시' 료칸을 운영했다는 걸 알기에 아버지인 요시하라 마사쓰구를 존경하기까지 한다. 등장인물을 보면 적어도 요시하라 아야코와 마쓰미야 슈헤이는 정상적으로 살아왔다고 봐야겠다. 계속 실타래를 풀어나가며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간 듯 보여도 후반부에선 하나둘 의문점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 '야요이 찻집'의 주인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사거나 치정에 얽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사실 의외이긴 했다.

한 번 빠져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준다. <희망의 끈>이 추리소설 특유의 긴박감 넘치고 스릴이 가득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람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이유를 다른 대체물로 여기며 집착하다 보면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한다. 시오미 유키노부와 모나처럼 관계 회복을 위해선 다른 누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다해 사랑해 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불행 끝에 와타누키 데쓰히코를 만나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다유코의 태생적인 불안도 이해 가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채 지나다 오히려 비극을 키운 건 아니었을까?

가볍게 술술 읽히지만 그 안에서도 생각할 부분을 남긴다. "나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라는 모나의 말처럼 태어난 존재는 모두 소중하다. 엇갈린 두 가족의 과거사가 모두 '야요이 찻집 살인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따져보면 하나즈카 야요이는 이혼 후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며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너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닌지 씁쓸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성실하게 평판 좋은 찻집은 운영하며 살아갔을 뿐인데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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