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에게도 국뽕으로 차오르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의전 행사마다 의미를 부여했고 당사자와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갖게 해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825일, 1195개의 대통령 일정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을 추려서 펴낸 책으로 공연 연출과 행사 기획 능력이 탁월했던 탁현민이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5년간 선임행정관, 대통령 행사 기획 자문의원,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수행하면서 겪은 일을 담았다. 의전 수행에 있어서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좋아서 책이 술술 읽힌다. 하나의 의전 행사를 치르기 위해 관련 공무원들의 노고와 수고스러움에 박수를 보낸다.
정권이 바뀐 지 불과 몇 개월이 되었다지만 벌써부터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서 속상했다. 국격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일들이 연일 벌어지는 현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모든 행사마다 그 의미와 상징성,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한껏 높았던 품격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국가 행사에선 대통령의 모든 몸짓, 연설 내용, 눈빛이나 행동까지 남다른 무게감을 갖고 있다. 행사 후 언론에선 앞다투어 행사 중 생긴 이슈나 연설 내용에 대하여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기 바쁘다. 그만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의전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관련 부처와의 의견 조율, 사전 답사, 동선 파악 등 행사 진행에 관련한 모든 과정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얼마나 심적으로 부담감이 컸을지는 책에 나온 에피소드를 읽어봐도 고뇌가 느껴진다. 5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치른 대통령 일정 내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공무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막중한 책임감 덕분에 우린 감동을 느꼈고 드높은 국격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남아있는 영상과 사진, 자료로나마 그날을 추억할 뿐이다. 다시없을 순간이고 지금 봐도 의전 행사의 품격과 우수함에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이 책은 의전 행사와 관련된 소중한 유산이자 기록물로 남을 것이다. 꼭지 오른쪽 상단에 QR코드를 찍으면 유튜브 동영상으로 연결되니 다시 보기를 해도 좋을 듯싶다. 찬란했던 봄날에 햇살을 맞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아련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커지는 것 같다.
거대한 담론, 이념을 갖고 읽지 않아도 그간의 노력들은 대통령을 위한 것보다 국격을 높이고 국익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론 결코 수행해낼 수 없는 결과물이다. 정부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과 행사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공무원들이 없었다면 국가 행사를 보며 감동받는 일이 있을까? 기존 권위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들과 간소화를 한 덕분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예우를 다했으며 항상 국민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대통령의 소탈한 웃음과 진정성 있는 연설로 잠시 우린 행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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