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90년대에 심취했던 문학적 향수를 느꼈다. 지금보다 볼거리가 부족했던 그 시절에 문학은 내 정신세계를 구축시켰던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어 몇 날 며칠을 붙잡고 그 두꺼운 책을 완독했을 때 뿌듯함은 한층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도 이미 최인훈 작가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문학세계에 빠져있었다. 1982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면접 자리부터 2018년 7월 임종을 거두는 날까지 오랜 인연이 이어졌고, 최인훈 작가와 나눈 40년의 배움을 이 책에 소상히 기록하였다. 순서대로 정독해도 좋지만 기록일과 무관하게 펼쳐들고 읽어도 뜻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다. 최인훈 작가의 작품세계를 해체하여 예술론을 펼치는 와중에도 시대적 사건을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에서 2018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한다. 최인훈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는 소소한 일상보다 배움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 배움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문학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깊이감이 남다르다. 최인훈 작가의 작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스승과 제자를 뛰어넘어 문학적 담론의 자리가 배움의 터전으로 바뀐다. 독서 모임 이후 한동안 잘 느껴보지 못한 기운이다. 최근엔 다른 누군가와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좀처럼 없다 보니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예전 기억을 복원시켰다. 문학보다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중요해진 시대에서 공허해진 마음의 양식을 영양가 없이 섭취하는 데 급급하나 보다.
지나보니 알게 되더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대화는 서로에게 깨달음을 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40년간 배움의 시간을 가진 저자가 쓴 책을 통해 우리들은 읽음으로써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회를 얻어서 좋다. 문학이란 곧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학문인데 예술 철학을 깊이 파고들수록 어렵고 복잡해도 얻는 부분이 있다면 끝까지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일 것이다. 문학소년으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헌책방을 제 집 드나들듯 자주 오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저자는 평생의 스승을 모셨다는 것만으로 행운아인 것 같다. 그래서 최인훈 작가가 쓴 작품들을 집요하게 탐구했었고 문학세계를 온전히 해석하려고 했다. 이 책은 최인훈 작가 사후에 바치는 헌정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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