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토종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농부들은 토종씨앗을 지켜나간 사람들이다. 대대로 농사지으면서 키워낸 작물들 중에 토종씨앗이 있었고 지금은 타산이 안 맞아 사라져가는 작물들이다. 종묘사나 시중에 파는 씨앗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직접 재배하면서 받아낸 토종씨앗들 덕분에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예전에 귀농귀촌학교를 다니면서 견학을 갔던 한 농가가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 토종 쌀을 직접 재배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쌀을 지켜나가는 곳이다. 이렇게나 다양한 품종을 가진 쌀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신기해하던 경험이 있다. 옛 선조들은 매우 다양한 토종 작물들을 키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행스럽게도 전국 농가를 다니며 토종씨앗을 찾아다닌 저자 덕분에 한국 토종씨앗 박물관을 개관했고 보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씨앗이 있어야 작물을 재배할 수 있고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다. 관심이 없으면 토종씨앗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토종씨앗에 담긴 가치는 그래서 매우 크며 오래도록 후세에 전해야 할 유산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할 수 없다. 꾸미지 않은 모습에서 정겨움마저 느껴진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 전혀 몰랐던 작물도 알게 되고 농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다. 발품 팔며 토종 수집을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농촌 현장을 찾으면서 건져올린 생생한 삶의 이야기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식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과 같다. 먹고사는 문제를 결코 가벼이 여기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토종씨앗에 대한 소중함은 농부들의 확고한 신념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버려졌을 일이다. 유기농, 웰빙 바람 덕분에 믿고 먹을 수 있는 좋은 작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다양성이 살아남을 여력이 생긴다. 일단 소비자들이 찾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나라에서 자란 작물을 지켜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시장에서 팔린다는 보장이 없는 토종씨앗에 대한 애정을 가진 농부들 덕택에 노아의 방주처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다양한 토종씨앗의 발굴과 수집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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