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낯선 신세계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저자는 10여 년간 스페인, 프랑스, 튀르키예, 홍콩, 멕시코,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이 자그마한 산문집으로 펴냈다. 여행이라는 건 사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에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관광을 목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현지 깊숙이 들어갔다. 비로소 나다운 나를 마주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풍경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날 겪은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며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말없이 떠나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약속된 대로 일정을 따라 매 순간을 소화했다면 우연히 마주치는 의외의 사건들이 발생할 확률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읽은 여행 에세이는 새로운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 열심이지만 이 산문집은 덤덤하게 겪은 일들을 풀어낼 뿐이다.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참된 묘미를 알게 된다. 선형적 루트에 익숙한 우리에겐 여행 가운데 일어나는 의외성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사실 본래 여행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어야 재미있지 않은가. 낯선 나라에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곳이라면 새로운 일 투성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세계와 조우하는 일이다. 세계는 넓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다.
아마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리울지도 모른다. 어느덧 무심히도 빠르게 가버린 세월이 멀게만 느껴질까? 여행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얻지 못할 순간들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이 퇴색해버렸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저자도 자신이 다녀온 곳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전보다 마음은 충만해졌을 것이다. 전보다는 여렸던 마음도 어느새 단단해지고 순간순간 대처하는 능력은 발군이리라. 우린 수많은 여행지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 아주 사적이지만 여행을 통해 한층 성숙해지고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도 여행을 계획하며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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