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0년 형 실형을 받고 투옥된 지 3년째인 1931년 6월부터 '조선일보'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1931년 12월까지 연재한 글을 엮어서 내놓은 책이 <조선상고사>다. 원본은 일반 대중이 편하게 읽기 힘든 책이라는데 김종성 사학자의 번역으로 우리 시대에 읽기 쉽도록 쉬운 문장과 정확한 사료로 보강하여 내놓은 것이다. 예전부터 <조선상고사>라는 책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총론부터 신채호 선생의 역사철학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와 '비아'의 투쟁과 역사를 구성하는 3대 요소로 인간·시간·공간으로 보는 관점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올바른 역사는 기록된 사실에 근접하여 알려고 해야 하는데 우린 혹 붙은 한국사를 진짜 역사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문이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왜곡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자주파 묘청을 숙청하고 사대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도 고대사를 청소하기 위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신채호 선생은 지적한다. 일연의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고대사 사료들이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다 보니 책의 결함과 오류가 있어도 교차 검증하지 못한 것이다. 근데 지금까지도 역사왜곡은 진행 중이다. 식민사관을 계승한 뉴라이트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등 끊임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지우고 어떤 목적을 가진 의도된 역사를 가르치려고 한다. '대한민국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역사'는 이렇게 난도질당하고 거짓말로 위장한 역사가 아니라 정확한 기록에 따른 진짜 역사를 말한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작자의 의도에 따라 사실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덧붙어거나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관점에 따르면 태조(1392년)부터 철종(1863년)까지 25대에 걸쳐 472년간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이 보장된 채 집필을 이어갔으니 얼마나 위대한 역사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일갈한 신채호 선생의 말마따나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된 사실을 기록한 역사를 진짜 역사로 알고 배우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사를 배우려는 열정은 넘쳐나면서 왜 우리 한국사를 제대로 알려는 노력엔 학계조차 의견이 분분한가? 앞으로 역사를 배울 때 <조선상고사>는 두고두고 읽어나갈 것 같다. 우리 고대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만약 신채호 선생이 조금이라도 부유했다면,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아마 퇴보한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진실에 근접한 고대사를 완성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조선상고사>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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